촌놈별곡/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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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별곡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 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斗溪 김세명
나는 촌놈이다. 내가 처음 전주에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당시 체육교사인 K선생님은 나의 운동모습을 보시고 전북체전에 출전시키겠다며 지도를 하셨다. 시멘트로 만든 역기를 드는 것으로 훈련을 하였다. 무주 촌놈이 역도선수로 출전한 것이다. 그 때 난생 처음으로 도시에 나와 본 것이다. 버스로 무주에서 전주까지 오려면 하루 종일이 걸렸었다. 비포장도로에다 아흔아홉 고개인 곰티재를 넘어 왔다. 노송동 어느 하숙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선생님은 도착과 동시에 나를 체육관에 데리고 가서 바벨로 된 역기를 들어 보라고 하셨다. 바벨 역기는 나에게는 너무 쉬워 보였다. 인상과 용상 규정대로 들어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당시 전주공설운동장( 현재의 문화촌)에서 전북체전이 열렸었다.
노천경기장을 시설 하여 그곳에서 시합을 하였다. 나는 반탐급에 출전하여 당당히 우승을 하였다. 대회가 끝난 다음 고향 무주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았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전북대표로 출전하라는 통지가 왔다.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을 뿐 아니라 장남이라 운동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운동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공부에 올인했다.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대학에도 합격하였으나 당시에는 논이나 소를 팔아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혼자 고학이라도 해야갰다고 마음먹었다. 막연히 서울로 갔으나 숙식할 장소도 없어 할 수 없이 시험을 치러 공군으로 입대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약했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열렬한 학구열을 접고 군대에 가서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버렸다. 제대를 하니 기다리는 것은 대책 없는 농사일이었다. 아버지의 무능을 탓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묵묵히 농사일만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농사로는 장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경찰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정년퇴직 때까지 이어진 것이 나의 생애다. 그간 살이오면서 그 때 용기가 없었던 나 자신을 한없이 자책하기도 했었다. 지금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무엇을 해서라도 대학에 등록하고 그 다음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합격통지서를 받은 경희대학교 교정에도 가보지 않고 포기했으니 참으로 억울했다.
꿈도 펴보지 못한 촌놈의 생애……. 성산별곡이 생각난다. 송강 정철이 식영정에서 뜬구름 같은 세상에 술을 마시며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 한 내용이다 .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 송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 버렸도다 / 높고 먼 공중에 떠 있는 학(鶴)이 이골의 진선이냐 / 이전에 달 아래서 혹시 만나지 아니 하였는가 / 손님인지 주인인지 그대가 진선인가 하노라
살아 보니 가장 중요할 때가 그때였다.
촌놈별곡(지은이 斗溪) 이제야 알았도다 / 살아온 세월에 앞서고 뒤처진들/ 종착역은 하나로세/ 쏜살같이 지나간 세월 앞에 뒤돌아본들 무엇하리/ 바라보니 석양에 남은 해는 댓 발이나 남았구나/ 남은 세월 즐기며 후회없이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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