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던 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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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지던 설이었는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명절은 우선 먹을 게 많아서 기다려졌다. 고깃국도 일 년에 두어 번 추석과 설 명절에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설 명절은 세뱃돈을 받는 재미로 더 기다려졌다. 달력에서 날짜를 하나씩 지워가며 이제 열흘 남았다, 이제 일곱 밤 남았다고 동생들과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렸다. 우리 동네는 씨족 30여 호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타성밪이는 두 집만 살고 거의가 일가여서 할아버지, 아저씨, 형님, 동생 하며 살았었다. 형제들이 많으니 음식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항상 모자라 배가 고팠다. 그런 시절의 명절은 너무나도 좋았고 항상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설 명절이면 어머님께서는 물레 옆 작은 솥에서 누에고치를 넣고 끓여 실을 뽑아내면 번데기가 나왔는데 그것은 간식거리로 인기였다. 길쌈으로 가느다란 명주실을 뽑아 명주베를 짜서 바지저고리와 조끼를 곱게 만들어 주셨다. 설에는 하얀 쌀밥에 시루떡과 인절미도 만들어 우리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가래떡도 만들어 닭고기를 넣고 떡국을 끓여주면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나일론 양말에 바짓가랑이 끝에 대님을 매고 두루마기까지 입고 나서면 장가 가도 되겠다는 어머님의 덕담에 괜히 어깨가 우쭐 해지기도 했었다. 먼저 아버님 어머님께 세배를 드리고 큰집 큰할아버님께 세배를 드리면 빳빳한 지폐 한 장씩을 세뱃돈을 주셨다. 설날 받은 세뱃돈을 모으면 몇 달 쓸 용돈이 생겼다. 돈이 귀한 시골에서 월사금 낼 돈도 없었는데 돈이 생겼으니 설 명절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세배를 다니면 주머니가 두툼해져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내가 세뱃돈을 주어야할 처지가 되었다. 조카들, 손자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있으니 대학생에게는 하얀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주면 고맙게 받는다.
초등학생 손자, 손녀들은 여기저기 큰집 작은집 세배를 다녀 모은 돈을 저희들끼리 셈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쁘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저 세상으로 가신지 오래 되셨으니 설 명절이 다가와도 나는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기다려졌던 설이 이제는 나이를 한 살 더 보태주니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설이 돌아오지 않을 리 없고 나이를 먹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게 기다려지던 설을 이제는 오지 못하게 막을 수만 있다면 막고 싶을 뿐이다.
(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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