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라는 친구/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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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라는 친구
김 학
쌀쌀한 초겨울 어느 날, 친구 Y내외가 정 한 움큼을 건네주고 바람처럼 떠났다.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는 말을 꺼낼 틈도 없었다. 승용차가 지나가자 아파트 마당에서 늦잠 자던 낙엽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자리를 피했다. 승용차가 내 눈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있어야 했다.
분홍색 책보로 싼 그릇에는 그 친구의 정이 담겨서 그런지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플라스틱 그릇에는 추어탕이 가득 들어 있었다. 국물이 흐를세라 야무지게 닫은 뚜껑을 열어보았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옛날 외갓집에서 먹었던 바로 그 추어탕냄새였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우리 내외가 일주일쯤은 너끈히 먹을 수 있으리라.
어린 시절 늦가을 외갓집에 가면 외삼촌들이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주었다. 처음 먹어본 추어탕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그 때에야 처음 알았다. 추어탕이 보양식(補陽食)이라는 이야기도 그 때 처음 들었다.
점심 때 추어탕에 밥을 말아먹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대접을 비웠다. 잊혀졌던 추어탕의 맛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Y의 생일에 그 친구 집에서 먹었던 추어탕 맛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 친구의 생일이었을까.
Y는 나와 한 방에서 근무했던 직장의 동료다. 그 친구는 자기 생일이면 어김없이 동료나 후배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이 추어탕을 대접하곤 했었다. Y는 직장에서도 인기가 좋았었다. 특히 후배나 여직원들이 그를 잘 따랐다.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의 인간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친구 부인의 내조가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Y는 언제나 베스트 드레서로 손꼽혔다. 바지와 와이셔츠는 칼날처럼 주름이 잡혀 있었고, 패스포트에는 늘 용돈이 두둑했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동료나 후배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간장 맛을 보여주었다. 그 모두가 그 친구 부인의 바다 같은 부덕(婦德)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무렵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자주 건네곤 했었다.
"여보게, 자넨 정년퇴직 해도 걱정 없겠어. 제수 씨가 세탁소나 음식점을 개업해도 성공할 테니까 말일세."
그 친구 부인의 음식솜씨와 복장관리 솜씨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Y와 나는 동갑내기이다. 그 친구생일이 나보다 달포쯤 늦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형 노릇을 하려했고, 그 친구는 웃으면서 그냥 잘 받아주었다.
그 친구 어머니의 팔순잔치가 R호텔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 Y는 나에게 건배제의를 부탁했다. 그 친구의 일가친척이며 친지들이 운집한 그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선언했었다.
"Y의 어머님 팔순을 축하해주려고 참석해주신 일가친척 친지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Y와 저는 동갑내기입니다만 제가 생일이 달포쯤 빠릅니다. 그러니 제가 바로 형입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었더니 모두가 웃으며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일가친척 친지 친구들 앞에서 내가 형임을 선언했고, 만장일치로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 자리에서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Y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부터는 합법적(?)으로 내가 형 노릇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 부인의 성이나 이름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부인이 현모양처라는 사실은 잘 안다. Y는 본받을만한 효자다. Y는 지금 80대 중반의 노모를 봉양하고 있는데, 자기 집에서 가장 넓고 큰방에 노모를 모시고 산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친구가 아무리 큰방을 노모에게 드리자고 해도 그 부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Y가 아무리 효자노릇을 하고싶어도 그 부인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친구 못지 않게 그의 부인은 효부다.
Y에게는 내가 늘 형이라고 우기지만 오히려 Y는 형처럼 나를 다독여준다. 추어탕을 싸들고 먼 거리를 달려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과분한 청복(淸福)이 아닐 수 없다.
Y는 붙임성이 좋아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내 고향친구나 학교 동창들과도 흉허물없이 지낸다.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Y를 부르자고 할 정도다. Y는 한두 번 만나면 바로 친해져 버린다. 외모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어서 그런 모양이다.
Y는 끈이 없는 구두를 즐겨 신는다. 술값이나 밥값을 안 내려고 구두끈을 매는 시늉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웃을 배려할 줄 알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자신이 손해를 보려한다. 외아들로 태어난 그 친구가 어떻게 그런 인간성을 갖게 되었는지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Y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다고 생일이 늦은 그를 형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외삼촌 같은 동생이라고나 할까.
Y를 만나면 우선 편안하다. 무슨 이야기이던 다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 그런 친구가 있기에 나는 늘 행복하다. 그런 Y가 얼마 전 담배를 끊더니 술까지 끊었다고 하니 섭섭하다. 이 다음에 만나면 술 끊고, 담배끊고, 여자 끊고, 밥 끊으면 사망(四忘=死亡)이라는 우스개나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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