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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의 추억/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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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7회 작성일 10-01-2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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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의 추억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금영 소나무 터널의 오솔길을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휙 불고 지나가니 마른 솔잎들이 떨어진다. 푸르른 소나무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요 며칠 북풍한설이 몰아치더니, 사나흘은 봄날처럼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어 수북수북 쌓였던 눈이 녹으며 잔설로 남아 있다. 마른 솔잎들은 쌓였던 눈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금잔디로 태어난다. 무덥던 여름날 더위에 지쳐 푸르러야할 그 기상은 어디로 가고, 푸석해지면서 윤기 없이 말라가는 듯싶었는데 찬바람과 함께 소생하여 그 자태가 푸르고 늠름하여 상록수로 민족의 기상을 되찾은 것 같아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랗게 깔린 솔잎들을 보노라면 솔잎이 땔감이던 시절이 생각난다. 저녁때가 되면 초가의 굴뚝에선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른 솔가루와 삭정이로 불을 때는 집은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마르지 않은 푸른 청솔가지로 불을 때는 집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뒷마당, 앞마당까지 뒤덮었다. 솔가루로 불을 때면 화력도 세고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도 재미가 있었다. 내 친구 남이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았는데 학교는 나하고 같은 반이었다. 초등학교 육학년 겨울방학이 깊어질 무렵, 남이가 나를 꼬드겨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따라나섰다. 산등성이를 돌고 고개를 넘어 그녀가 찜해놓고 다니는 곳이 있었다. 누런 솔잎이 쌓인 곳을 찾아 갈퀴로 팍팍 긁으면 갈잎과 함께 수북이 쌓였다. 나는 남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행여나 질세라 마구 긁어모았다. 자기를 따라다니지 말고 저만큼 떨어져서 하라고 일러주었지만 남이가 보이지 않으면 무서워서 항남아~ 항남아~ 하고 불러대면 저 건너 산위에서 메아리만 되돌아왔다. 남이는 딸 부잣집 막내로 남동생을 보기위해 부모님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남이는 잔솔가지를 쳐서 밑에다 깔고 자기의 갈퀴나무 둥치를 먼저 만들고, 내 것도 만들어주었다. 두 개의 갈퀴나무둥치는 웅크리고 있는 어미 소와 송아지 같았다. 내 나무 둥치는 그렇게 작았다. 나무를 다 묶어놓고 지금부터는 재미있게 놀자면서 춘향가를 흐드러지게 불렀다. 그때는 시골장이 5일장인데 남이의 부모님은 장날마다 시장에서 씨앗을 팔기 때문에 부모님을 도우러 다녔다. 시장에서 약장수들이 판소리 한바탕을 벌이면 구경을 하다가 어깨너머로 춘향가며 심청가를 배웠다고 한다. 청중이라고는 나 한 명뿐인데 얼마나 열창을 하였던지 심청가를 부를 때 나는 너무 슬퍼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아마도 잠간 내가 심청이가 되었나보다. 추운 줄도,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그때 얼씨구 잘한다 하고 추임새를 했더라면 더 잘했을 텐데 박수만 힘껏 쳐주었다. 남이는 날이 어두워진다고 작은 것을 불끈 들어 내 머리위에 올려주었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나 주저 않고 말았다. 다시 또 들어 내 머리에 올려놓고 자기 것을 머리에 이고는 쏜살같이 산을 뛰어 내려가 버렸다. 나무둥치를 이고서 내려가야되는데 한 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를 악물어 봐도 어지러워 쓰러져 버렸다. 산은 점점 어두워지고 무서워서 갈퀴나무둥치를 내팽개치고 뛰어 내려가면서 너무나 억울하고 아까워서 얼마나 울었던지 마중 나온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다그쳐 물으셨다. 딸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나무는 안보이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돌아왔으니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산으로 다시 올라가 어머니가 나무를 이고서 어두워진 산길을 더듬더듬 내려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많이 꾸중하셨다. 다시는 산에 가지 말라고 야단을 치셨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콩 뛰며 울컥한다. 나는 이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면서 노랗게 싸인 가루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내 아픈 기억은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나는 소나무를 참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까? 우리 선산 산제당에는 할아버지 산소가 있었고 지금은 부모님 산소도 있는 친정집마을 뒷산은 마치 병풍을 치듯 전체가 죽죽 뻗은 울창한 적송들이 산소를 지키고 있다. 우리 밭에 가는 길목에는 김 씨네 사당이 있는데 그곳에 묘하게 휘어진 소나무들이 있어 그 송정에 그네를 달아 춘향이 그네 타듯 하였고, 송정 마당은 마음껏 뛰어노는 천국이었다. 소나무는 어디를 가나 가까이 볼 수 있고 사철 푸른 기상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내가 잠시 머물렀던 무주구천동의 빼어난 적송들의 밑동은 거북의 등 같기도 하고 쭉쭉 뻗은 적송의 붉은색은 용맹한 장수의 갑옷과도 같아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 한 부분에서는 소나무의 생태계와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소나무의 해박한 지식을 다소나마 얻을 수 있어 한 겨울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청암 부인이 손부에게 일러주는 내용이다. 작은 솔 씨가 떨어져 관목이 되려면 이백년이 걸려야하고, 집안의 문중 산에다 소나무를 키우는 것은 오십년 목, 백년 목, 이백년 목을 후손들이 관목으로 쓸 수 있게 선조들이 애서 가꾸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소나무가 숲에 가득 차면 가뭄이 없고, 떨어진 낙엽은 긁어다가 불을 때면 가리나무 불땀이 난방을 해결해주었고, 나무 중엔 영물이라 풍채와 운치는 더할 나위없는 용의 기품이라 하였다. 소나무는, 나무 자체가 아주 영험한 생체(生體)로 소나무 꽃은 송화로, 다식을 만들고, 또, 솔잎은 선식(禪食)을 만들어 먹게 되면, 몸의 기를 맑게 해 주기에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가 끓여 먹고, 속껍질 송기(松肌)로는 송기떡을 해먹었다 한다. 그뿐인가. 솔방울을 따다가 송실주를 담갔다. 옛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산야에 소나무가 없었으면 우리 백성은 다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것 벗겨 먹고, 그 비참한 중에도 살아남은 것은, 자신의 껍질 하나가 능히 사람의 목숨을 살릴 만한 소나무의 덕성 때문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하늘로 솟구친 소나무 한 그루의 쓰임이 이만하다면 어찌 이를 영물(靈物)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무는 지상의 둥치와 지하의 뿌리가 그 길이나 모양이나 굵기가 똑 같다고 하니, 하늘을 찌르게 높았던 소나무의 푸른 꼭대기처럼 그만큼 땅속 저 깊은 어둠의 골(骨)에 뿌리의 끝이 닿아 있으리라. 그 소나무의 정기가 뿌리 끝까지 하얗게 어리어 백설기처럼 덩어리져 엉겨있는 것이 바로 이뇨작용과 신진대사와 부종을 없애주는 보약, 백봉령이다. 오죽이나 귀하고 좋은 약재면 백복신이라고 신(神)자를 붙여 이름 지었을까. 이걸로 떡을 해서 나눠 먹으면 신선이 되지나 않을까. 죽지 않고 천 년을 산 소나무는 그 가슴속에 구슬이 열린단다. 제 몸이 없이 어둠 속으로 우우 내려가는 그 기운은, 어쩌면 몸을 잃은 혼백일는지도 모른다. 어린 소나무에 송진이 어리고 어려서 고약마냥 엉기면 그 댓진보다 끈끈한 점액을 옹이로 박힌 소나무. 차마 삭이지도 못한 그것이 구슬이 된다니……. 송진이 마치 안개나 이슬같이 맑은 비바람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살고, 천 년이 가고 그 천 년이 지나 그토록 영롱한 구슬이 되는 것인가. 또 세월이 가고 가서 한 천 년 지나면 이제는 돌덩어리같이 단단하고 해같이 말간 구슬이 되는데, 그게 바로 호박(琥珀)이라는 보석이 된다. 나는 최명희의 <혼불>을 읽고, 소나무의 일생이 이러하기에 저 푸르른 소나무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하절기엔 남부지방과 이곳의 소나무들이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푸른 기상으로 풍채와 운치는 길이길이 천년의 세월 속에 낙락장송이 되리라. 노랗게 금잔디가 된 낙엽송들을 바라보면 그 뿌리를 이불로 덮어주고, 사철 푸른 노송 한 그루가 머금고 있는 물기는 천년을 살고, 낙엽을 긁어다가 불을 때면 어려운 시절 등을 다숩게 해주었다. 이제는 연료와 식량도 부족하지 않다. 그날 가루나무가 아까워서 엄청 울었던 그해 겨울의 추억이 오늘 따라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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