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윤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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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윤재석
아침 여섯시쯤이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을 조금 더 자고 싶어도 방 앞뜰의 나무에 새들이 찾아와 지저귀는 통에 일어나야 한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많이 얻는다는 말이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새들은 정말 부지런한 동물이다. 자연히 우리부부도 덩달아 부지런히 일어나 일찍 식사를 하게 된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창문을 여니 처서를 지낸 초가을의 시원한 아침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의자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 하늘이 아침 공기와 어울려 더욱 청량하다. 나의 마음도 시원하여 저절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하얀 구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한가롭던 구름은 어느덧 활동사진의 스크린이 되고 말았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펼쳐져 지나가고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1960~70년대의 일들을 이야기하면 아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금 70세 이상의 노인이라면 60년대의 생활상이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바지를 입어도 팬티는 없었고, 저고리를 입어도 러닝셔츠란 없었다. 겉옷을 입고 속옷을 따로 입던 시대가 아니었다. 여름이면 학교에서 오다 책보와 바지저고리를 모래나 자갈밭에 그냥 벗어 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시냇물로 뛰어 들어 그날하루를 보냈다. 몸에는 아직도 명지털이 보송보송한 것들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고 즐거운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놀기만 했다.
여름이라지만 물속에서 오래 놀다보면 입술은 파랗게 변했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이때쯤이면 물가 모래밭에 신작로가 생겼다. 저마다 길쭉한 돌멩이를 하나씩을 주어서 밀고 다니면 장난감 자동차가 되었다. 몸은 온통 모래투성이다. 그래도 재미가 있었다. 다시 물속에서 한참을 놀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늦게 왔다고 야단을 치셨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밥을 차려주면서 때가되면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이처럼 부모님들은 자식사랑이 대단하셨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부모님들의 사랑이다.
겨울이면 시냇물과 징검다리도 꽁꽁 얼어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져 물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조심조심 건너야 된다. 만일에 빠지게 되면 추운 겨울이라서 발이 몹시도 시리다. 학교에 도착하면 난로에 발을 녹이곤 했다. 여름에 물놀이를 하던 곳이 겨울에는 얼음판이 되어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는 놀이터로 변해 놀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얼음이 깨져 발과 바지가 젖어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로부터 혼쭐이 났다. 때가 되면 바로 집으로 와야지 올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양말과 바지저고리를 장롱에서 꺼내주시면서 추울 테니 빨리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이야 시장에서 옷을 사면 그만이다. 예전에는 하나하나 바느질을 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다. 낮이면 일을 하고 저녁이면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일일이 만든 것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자칫 잘못 하면 바늘에 손을 찔리기도 한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빨간 피가 솟아오른다. 바늘에 찔린 손가락이 아프기도 하시겠지만 꾹 참고 바느질을 하신다. 그때 어머님의 손을 한 번만 이라도 만져 드렸다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제야 생각난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계절이 따로 없다는 것을…….
이처럼 부모님께서 애태우시던 내가 자식을 두고 손자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이제는 조금 이라도 부모님의 넓고 깊은 사랑을 알 듯하다. 그러나 내가 안 들 얼마나 알랴? 자식에게 쏟는 정의 백 칸의 하나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을 하늘은 파란 빛을 띄우면서 더욱더 높고 넓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마도 이 가을 하늘보다도 더 넓어 끝이 없나 보다. 마음으로 부르는 '어버이의 은혜'란 노래를 마치니 나의 활동사진도 멈추는 것 같다. 오늘의 이 영상은 아련히 가슴에 남아있다.
(2009.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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