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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을 사용하다/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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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09-12-3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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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을 사용하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전주여고 본관 앞에는 신사임당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26년 개교되어 84년간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 학교다. 개교 이래로 전주여고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현모양처인 신사임당을 본받으라는 교육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리라. 기축년 세모에 보니 추위를 피해 멥새가 동상 머리에 앉아 있었다. 어느 때는 한 마리가 어느 때는 여러 마리가 짹짹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머리 장식처럼 보일 때도 있고, 왕비의 의관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멥새들이 동상과 어우러져 마치 동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신사임당(본관: 평산, 본명: 仁善, 사임당은 당호 1504-1551)은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자 서화가다. 강릉 출생이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자수와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또한 시와 그림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 산수화와 포도· 풀· 벌레 등을 그리는 데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어린 시절 꽈리나무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닭이 그림 속의 메뚜기를 쪼아 버렸다고 한다. 네 아들과 세 딸을 진정한 사랑으로 키웠으며,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사임당의 자애로운 성품과 행실을 이어 받은 7남매는 인격과 학식이 뛰어났다. 아울러 사임당은 유교의 경전과 좋은 책들을 널리 읽어 학문을 닦았다. 예술가인 동시에 어진 부인으로, 또 훌륭한 어머니로 여성의 모범이 되어 존경을 받고 있다. 신사임당은 글이나 그림에 그 실력이 뛰어났으나 자신의 실력을 함부로 뽐내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잔칫집에 초대받은 신사임당이 여러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국을 나르던 하녀가 어느 부인의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그 부인의 치마가 다 젖었다. "이를 어쩌나. 빌려 입고 온 옷을 버렸으니……." 그 부인은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잔치에 입고 올 옷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새 옷을 빌려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옷을 버렸으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 때 신사임당이 그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저에게 그 치마를 잠시 벗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수습을 해보겠습니다." 부인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신사임당에게 옷을 벗어 주었다. 그러자 신사임당은 붓을 들고 치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치마에 얼룩져 묻어 있었던 국물 자국이 신사임당의 붓이 지나갈 때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되기도 하고 싱싱한 잎사귀가 되기도 했다. 보 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그림이 완성되자 신사임당은 치마를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치마를 시장에 갖고 나가서 파세요. 그러면 새 치마를 살 돈이 마련될 것입니다." 신사임당의 말대로 시장에 가서 치마를 파니 새 비단 치마를 몇 벌이나 살 수 있는 돈이 마련되었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림이 마음을 수양하는 예술이라 생각했던 사임당은 그림을 팔아 돈을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 때는 그 부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에서는 ‘신사임당 화폐인물 선정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 이유가 해괴했다.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남편이 첩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였다. 자녀 교육도 특별했다기보다는 보통의 좋은 어머니 정도다. 남다른 면모라면 시대적 제약 을 넘어 시와 서화 등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간 점이다. 자기표현의 영역을 만들어 간 그녀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다. 율곡의 어머니기 때문에 위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를 현모양처로 선정하면 여성들이 애 낳기를 꺼린다는 이유다. 결혼하면‘남편 출세하도록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애를 낳으면 영재교육을 해야 하니 결혼도 꺼릴 것이다. 여성들이 5만 원 권을 볼 때마다 “애 낳기 싫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반대를 했었다. 여성을 폄하하고 속 좁은 여성단체의 반대이유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내가 사는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28일 11:50분경 누구인가 세탁소 옆에 가보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10년째 11회에 걸쳐 얼굴 없는 천사가 온 것이다. 4명의 직원이 가보니 팔천만 원이 넘는 돈 뭉치와 편지 한 통이 박스에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님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만 원 권 백 장 묶음 열 개와 만 원 권과 동전 등이 들어 있었다. 주민들은 그를 얼굴 없는 천사라 부른다. 그가 있어 해마다 세모에 행복했고 전주가 아니 전북이 자랑스러웠다. 현모양처이신 신사임당과 얼굴 없는 천사의 어머니와 너무나 흡사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신사임당이 도안된 돈을 사용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여권신장이 되었는데 왜 여성단체가 반대했을까? 십만 원짜리 수표는 이서를 해야 하고 위조 여부를 조회도 해야 한다. 전에 만 원 권이었다면 천만 원이면 목침묶음이다. 그런 면에서는 간편하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신사임당 도안이 든 목침 두 개면 1억 원이고, 이십 개면 10억 2백 개면 100억 원이다. 전주여고 교정에 세워진 신사임당 동상에서 노는 멥새가 배가 고픈지 자꾸만 짹짹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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