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중늙은이 제자들/윤석조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중늙은이 제자들/윤석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0회 작성일 09-12-28 10:31

본문

중늙은이 제자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졸업 30주년이라며 전라고등학교 제9회 동창회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 나이도 이제 중늙은이들이다. 10년 전 졸업 20주년 동창회 모임을 가졌던 전주 리베라호텔 백제홀 그 자리였다. 전라고등학교로 전근되었을 때 그 학교는 개교한 지가, 채 10년도 안된 신설 공립 고등학교였다. 서울 명문대학과 지방 국립대학의 입학성적여하에 따라 학교평가가 되던 때였다. 많은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고등학교마다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3학년 진학지도에 심혈을 쏟았다. 전교생들은 보충수업을 해야 했고, 3학년 학생들은 아침과 오후는 물론,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었다. 담임선생님들도 아침 일찍 출근하고 오후 늦게 퇴근 하면서 학급에 들어가 학생들의 자율학습을 감독하였다. 야간 자율학습감독은 3학년 학급담임들이 조를 편성하여 돌아가며 하였다. 3학년 학생들은 입시전쟁 속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고, 담임선생들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그 때 나는 3학년 5반을 담임하였다. 그들이 졸업 20주년 무렵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 얼마나 변했을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들었다. 무척이나 보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20주년 행사 때는 반 별로 자리가 구분되었지만 전체 모임행사를 먼저 하고, 반 별로 다른 공간에서 따로 모였었다. 그때 나를 찾는다는 사람이 있다하여 밖에 나갔더니, 우리 반 실장이었던 오군의 형이었다. 동생이 꼭 오려고 했는데 바빠서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며, 조그마한 선물을 주고 갔었다. 며칠 전 오군으로부터 졸업 후 처음으로 전화가 왔었다.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현재 육군 소령으로 전방에 근무 중이라고 했다. 우리 반이 스물 댓 명이나 참석하여 참석률이 아주 좋았었다. 선생으로 3학년 담임이었던 보상(補償)을 제자들로부터 흡족하게 받았는데, 보고 싶은 두 얼굴이 보이지 않았었다. 오군은 육사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졸업 후에도 그냥 자취하는 집에 꼼작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2사관학교(간부후보생) 원서 마감 하루 전에 내가 그 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나는 야단을 치고 제2사관학교 원서를 내도록 권고 하였다. 겨우 마감 날 원서를 작성했었다. 그 뒤로는 바람결에만 소식을 들어왔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홍군도 보이지 않았다. 육사(陸士) 3학년 때 운동을 하던 중 사고로 퇴교 당한 제자다. 3년 뒤 12회 졸업생들의 입학원서를 작성할 때 학교를 찾아와 수능고사 원서를 또 작성해 갔었다. 여수가 집인 홍군은 그 날 전주 친구들과 만나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울었다는 말을, 그가 서울로 떠난 뒤 며칠 지나서 들었다. 그 날 우리 집에 데리고 가 재우고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어느새 또 10년이 지났는지 희미한 기억속의 얼굴들이 몇 차례 전화로 30주년 행사에 꼭 나오라고 권하였다. 전북도청에 근무한다는 김군의 도움으로 함께 리베라호텔 기념식장까지 갔다. 제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 반 자리로 찾아가니, 졸업생 61명 중 1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 30주년 만남의 행사가 반 별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졸업 후에 처음 보는 제자들도 대여섯이나 되었고, 얼굴이 몰라보도록 변한 제자들도 있었다. 졸업 20주년 기념식 때 본 제자와 비교적 자주 보는 제자들이 많았다. 원탁에 둘러 앉아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졸업 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제자들의 소식을 대강 대강 들었다.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던 장군은 공군 대령이 되어 처음으로 만났다. 얼굴 모습이 거의 변치 않아 얼른 알아 볼 수 있었다. 보고 싶던 홍군은 서울 K대를 졸업하여 KT에 근무하며, 오군은 육군 중령으로 작전부대에 근무한다는 소식을 장 대령으로부터 들었다. 30년 만에 만난 김군은 삼성에이스 토목건축 팀장이라며 살아온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정다감하고 자주 찾아주던 유군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자회사를 설립하여 잘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공부를 잘했던 김군은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얻었고 그곳 회사에서 근무한다고 알려주었다.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 서울 도곡동 신세계치과의원 원장 김군, 소아과의원 원장인 고군,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안군과 김군, 개인사업을 한다는 이군도 졸업 후 처음 만난 제자들이었다. 가지고 나갔던 나의 졸작, 「커풀반지」한 권씩을 주었더니, 물리선생님이 언제 문인이 되셨냐며 축하해 주어 듣기 좋았다.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서 좋은 이야기와 많은 소식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졸업생들의 전체적인 행사로 노래자랑과 상품추첨이 있었다. 우리 반 제자들은 거의 다 당첨되었는데, 그 상품권을 모두 나에게 돌려주어 갑자기 행운아가 되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제자들의 환송(歡送)을 받았다. 오십대 초반의 나와, 제자들의 직장과 직위를 비교하여 보았다. 제자들이 잘 성장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흐뭇했지만 아직 한 번도 못 만난 제자들의 안부가 더 궁금해졌다. (2009. 11. 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