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이곳, 전주/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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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이곳, 전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 미 연
“나 전주로 발령났다. 내일 모레부터 전주로 출근이야.”
“쓸데없는 농담하시네. 빨리 와, 고등어 구워놨어.”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2008년 1월 어느 날 저녁, 이런 남편의 전화 한 통으로 우리 부부의 모든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매년 초가 되면 남편의 회사에서는 인사이동이 있다. 어떤 이들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되는데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지방 발령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결혼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생각에 처음에는 자꾸 헛웃음만 나왔다. 심지어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뭔가 잘못 되었을 거야, 남편과 비슷한 이름의 동료와 착각했겠지.'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급하게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전주’를 찾기 시작했다.
“전주? 양반의 도시? 비빔밥 맛있다는 거기 말하는 거야?”
남편이나 나나 전라도 쪽에는 친척 한 명도 없었다. 여행조차 해 본 적 없는 낯선 곳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남편은 절대 혼자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내 소중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은 어떤 결론을 내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중대한 선택과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3일 뒤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주로 출근을 시작했다. 남은 것은 나였다. 회사에 사표를 쓰고 급하게 집을 구하고, 살던 집을 정리했다. 나의 삶의 터전이 바뀌는 데에는 고작 한 달이 걸렸다.
어느덧 나는 이 곳 전주에 와 있었다. 이사와 퇴직이 동시에 이루어져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탓에 아파트 현관만 나서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가장 힘든 것은 평일 대낮, 바쁜 세상 사람들 틈에서 나 홀로 내팽겨진 채 방황하는 평일의 오후 시간이었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 재래시장과 대학교 앞 빵집뿐이었다. 하루를 꾸역꾸역 억지로 보내다가 밤늦게 남편이 퇴근하면 어린애처럼 눈물이 났고,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의 마음 또한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 온 지 2년이 되어 간다. 조금만 걸어도 등 뒤로 땀이 흥건하게 젖어 오는 여름이 시작될 때쯤, 나는 약간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여름이 지나 찬바람이 스치는 그날부터 슬퍼질 것 같았다. 이제야 이곳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울적할 때면 혼자 거닐던 한옥마을 길, 책을 읽기 위해 늘 찾았던 단골 커피숍, 더위를 식혀 주던 유명한 냉모밀집, 자주 달렸던 임실 드라이브길, 다이어트를 위한 작심삼일 코스 건지산, 만나주는 친구는 없어도 내가 가면 늘 반겨주는 서점의 책들. 내가 만들고 내가 즐겼던 풍경들이야 내 마음 안에서 추억이 되어 고이 남겨두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기쁘고 고맙기 그지없던 인연들이 이제는 슬프고 미안하기만 하다. 깊은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교실 문을 열었던 수필 강의 첫 수업. 무조건 아랫사람을 가르치려 하고, 그들의 삶이 정답이라고 확신하며 사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받는 내내 나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공감과 공유, 나는 이 소중한 마음을 배웠다.
내일이면 일 년 동안 일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한다. 집에 있는 것이 우울하여 시작한 시험감독 일 또한 내게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같은 주부로서 대화가 통했던 팀장님과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입 한 번 뻥긋 안하고 하루를 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적당한 긴장감을 주었던 것도 이 아르바이트 덕분이었고, 아무런 소속감 없이 지내던 내게 명분을 만들어 준 것도 이곳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주었던 세례 성사. 내 휑한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문을 연 성당. 용산참사 이야기를 늘 해주시는 보좌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일 년을 보냈다. 오랜만에 존경하고 싶은 존재가 생겼으니 참 고마우신 분이다.
그리고 내 수필 첫 작품의 등장인물이 되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올랐던 건지산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소울 메이트라고 말하는 내 친구 민희. 이 친구를 남겨 두고 떠날 일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른다. 남편의 질투를 살 만큼 서로를 애인이라고 표현했던 친구 민희는 전주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이다.
떠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정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떠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연들과 나의 추억들을 2년 동안 더했던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두고두고 나의 인연들을 간직하고 이어갈 것이다. 모두들 건강하고, 근심 없으며 늘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이곳의 소중한 인연들도 나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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