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해후/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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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만의 해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했던 제자들이 동창회를 갖는다는 연락이 왔다. 50년 만에 만나는 모임이다. 나이를 헤아려보니 모두 환갑을 넘긴 사람들이다. 하나하나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요즘의 모습이 아니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초등학교 학생때의 모습이었다. 해방 뒤 어수선한 때에 태어나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면서 온갖 시련을 다 겪은 사람들이다.
마침 모교 교장이 동기생의 제자라 학교에서 모였다. 시간에 맞춰 찾아갔더니 20여명이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하고 소리치며 맞아 주었다. 참 반가웠다. 졸업 뒤에 처음 만나는 제자도 여러 사람이었다.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이 끌어안고 반가워했다. 남자들과는 악수만 했는데 여자들은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코 흘리개였던 시절로 돌아가 어린양을 했다. 처음 보는 제자를 안고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참느라 힘들었다.
자리에 앉아 내가 가지고 간 초등학교 때 사진들을 보며 이름을 부르니 놀라워 했다. 어떻게 지금도 이름을 외우느냐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때 담임했던 제자들을 모두 외우고 있다. 내 교직생활에서 처음으로 2년간 맡은 제자들이고 젊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과는 정도 깊이 들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무보수로 정렬을 다 바쳐 과외공부를 시켰고, 결혼 초인데도 이불 보따리를 싸들고 가서 가르쳤다. 졸업식 날은 해가 저물어도 가지 않고 교실에서 울어 나도 같이 붙들고 눈물을 훔쳤던 제자들이었다.
그중에는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도 못하고 남의 상점에서 일을 배워 지금은 사장이 된 제자도 있다. 서울의 큰 시장에서 바지 도매업을 하고 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를 나와 장군이 된 제자도 있다. 장군이 되기를 기대했던 대령도 있다. 공무원으로 능력을 발휘한 사람과 목사도 있고, 교장이 된 사람도 있다. 사업에 눈이 떠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도 있고, 많은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는 농군도 있다. 신토불이라 칭한다. 공부는 물론 예능에도 아주 우수해서 중학교에 3년 특대생으로 입학했으나 가정이 어려워 그만 둔 애석한 제자도 있다. 지금은 가정에서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 행복하게 산다. 동생들 때문에 자기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포도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예쁜이도 있다. 농기계수리와 용접을 시작하여 지금은 주유소를 경영하며 시인으로 활동하는 사장도 있다. 요리법을 연구하여 전국을 누비는 요리강사도 있다. 모두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떡잎부터 알아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속에서도 의복이 항상 깨끗했다. 소매 끝에 코 묻은 사람도 없었다. 남자는 검정양복을 입었고 여자는 까만 덧옷에 하얀 칼라가 나와 귀여웠다. 내가 떠올린 모습은 그렇게 단정한 인상들이었다. 부모님들이 깨끗하게 자녀들을 키워 훌륭한 일꾼들이 된 듯하다. 나는 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별로 벌을 준 일도 없었던 것 같다.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니 벌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서로 아귀가 척척 맞았던 것 같다.
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나에게 인사말을 청했다. 50년 만의 해후를 기뻐하고 자주 전화연락이라도 하면서 살자고 했다. 이제 60을 넘었으니 앞으로 남은 30여년은 즐기면서 건강하게 살라고 하였다. 시인으로 등단한 제자가 자작시를 낭송한 뒤 학교를 둘러보았다. GTL사업으로 모든 건물을 새로 지어 그때 그 시절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언덕위의 나무만 옛이야기를 하였다. 졸작이지만 문인화 2점을 선물로 전달했다.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 적당한 장소에 걸겠지…….
학교 앞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보따리를 끌렀다. 한 제자는 나를 좋아했다고 하니, “너만 그랬니, 나도 그랬다.”하며 웃었다. 지금도 가끔 내 꿈을 꾼다고 한다. 농사철에는 아이를 본다고 결석만 하여 미안했다고도 하고, 중학교에 가지 못해 한이 된다는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가니 마음들이 넓어져 숨기고 가리고 할 것 없이 터놓고 이야기했다. 술잔이 돌고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더니 노랫가락이 나와 흥겹게 놀았다. 재미가 솔솔 풀려 나오는 즐거운 자리였다.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었지만 추진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내년 봄을 약속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귀여운 제자들에게 즐거움과 건강의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 2009. 10.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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