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중국을 다녀와서/오형곤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중국을 다녀와서/오형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803회 작성일 09-10-30 08:40

본문

중국을 다녀와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오형곤 전화벨 소리가 울려서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전화 끊지 마시고 인터넷을 열어서 제가 보내 드리는 것을 프린트하세요.” 마침 인터넷이 열려있는 상태여서 준비되었다고 했더니 곧바로 티켓(Ticket)이 올라와 두 장을 프린트했다. 우리 내외의 전자항공권 발행확인서였다. 프린트를 했다고 했더니 “그것만 가지고 인천국제공항에 가셔서 안내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되니 9월 30일 오전 9시 30분 비행기를 타세요. 제가 중국 공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며느리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한가한 때에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니 중국에도 우리나라처럼 추석날이 있는데 중국은 약 5일간 휴가를 준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1일에서 5일까지 쉬게 되니 손자 손녀와 같이 이 기간에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9월 29일 서울 막내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30일 아침 비행기를 타니 약 3시간 30분 만에 중국 광동성 광주공항에 내렸다. 며느리가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 승용차로 약 1시간 만에 아들집에 도착하니 손자 손녀가 서로 얼싸안고 반겨 주었다. 기쁘기 한이 없었다. 손자는 중학교 3학년(중국학교)이고 손녀는 카나다 계통의 외국인학교 고등학교 1학년이다. 손자는 중국어를 더 잘하고 손녀는 영어를 더 잘하는데 손자 손녀 둘 다 수학을 잘하여 장래 수학교사가 되겠다고 한다. 둘 다 수학과 외국어를 잘 하니 꼭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다음날 아들내외와 손자손녀랑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마카오는 포르투칼령(領)이었는데 중국에 반환하여 지금은 중국땅이다. 그러나 외국처럼 취급되어 누구나 여권이 있어야 드나들 수 있었다. 우리 내외는 출국하기 전에 며느리로부터 더블중국비자를 받아 갖고 와서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성바울 성당의 유적과 몬테요새를 둘러보았는데 요새의 성벽 위에는 옛날의 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손자는 중국어를 손녀는 영어를 통역하는 것을 보니 기뻤다. 마카오(MACAU)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하유산에 ‘동서양 역사의 중심 마카오‘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바라광장, 릴라우광장 등 8개의 광장이 있고, 아마사원, 무어리쉬배럭, 만다린하우스 등 22개의 역사적인 건물이 있다. 또 이곳에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교회와 요새 그리고 중국의 첫 서양식의 극장과 등대뿐 아니라 청나라왕조의 부유한 상인들의 거주지도 있다. 시가지에는 포르투칼식 건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성바울 성당의 유적은 마터데이교회 잔해의 정면을 보여주었다. 이 교회는 1594년에 설립하여1762년에 문을 닫은 성바울대학 중 일부였으며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풍의 대학이었다. 1835년 화재로 인해 대학과 교회는 정문과 토대만을 남긴 채 모두 불타버렸다. 몬테요새는 1617년 1626년 사이에 건축되어 사다리꼴모양으로 약 일만 평방미터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데 마카오 방어를 위한 중심부라고 한다. 원래 요새는 300여년동안 제단으로 사용하였으나 포르투칼인들에 의해 요새로 전환되었다. 현재는 마카오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성바울성당의 유적과 마카오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을 관광하고 베네티안(VENETIAN)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같으면 고층 아파트가 여러 동이 사방으로 배열되어 있고 가운데에 넓은 광장이 있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놀 수 있게 만들었다. 하늘같은 천정을 아크릴로 뒤덮었는데 그 위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처럼 흰 구름이 몇 점 그려져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각 동마다 음식점과 각종 점포들이 있고 중앙에는 카지노(오락장)가 있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다음날 베네티안 광장에서 포르투칼 뱃사공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가면서 뱃사공의 포르투칼 노래를 들었다. 배를 타고 중국 광동성 광주시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강문시에 있는 아들집에 도착하였다. 이 강문시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몇 개 진출해있는데 며느리가 여기에서 사귄 친구의 초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초대해 준 분과의 대화에서 한때 인건비가 적게 든다하여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거의가 철수했고 경쟁력이 있는 기업만 남아 있으나 고전하는 편이라고 했다. 아들 말에 의하면 중국인 노동자들은 근로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사명감도 없이 단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승진도 하고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만 그냥 하면 된다는 식이란다. 아마도 공산주의하에서 단순 노동만 하는 형식인 것 같았다. 그러니 명절 기간에는 노동인원을 많이 확보해두어야 한단다. 명절날 귀가하여 돌아오지 않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란다. 오후에는 강문시내에 있는 강문동호공원(江門東湖公園)을 산책하며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남쪽 따뜻한 지역이라 아열대식물이 많고 호숫가에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는 그 나무가 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나무가 북쪽 추운지방에 분포하는 나무로 알았는데 다시 한 번 알아 봐야겠다. 10월 6일 아시아나항공편으로 서울에 도착하여 하루 쉬고 나 혼자 먼저 전주로 내려와 밀린 이메일을 처리하고 집안일을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번 중국여행에서 아들 내외가 손자손녀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을 보고 흐뭇하였다. 또 며느리가 우리 내외를 친정부모 모시듯 섬기는 걸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쪼록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이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l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 더블비자: 6개월 이내에 두 나라의 외국을 다닐 수 있는 비자를 말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