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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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숨을 쉰다. 지금도 분명 숨을 쉬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김없이 숨도 쉬고 맥도 뛴다. 아아, 오늘도 살겠구나! 어서 일어나자. 보너스 인생! 이 나이가 되도록 변함없이 숨을 쉬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안녕하십니까?’란 인사말이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밤새 안녕하지 못했다면 변고가 있거나 죽었다는 뜻이다. 미국은 ‘굿모닝!’, 일본은 ‘오하요!’, 중국은 ‘니 하오!’ 등인데 하필이면 우리나라는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진지잡수셨습니까?’란 말인가! ‘먹고와 안녕’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일이 분명하다. 잦은 외침과 전란을 하도 많이 겪고 보니 자연발생적으로 그런 인사말이 생긴 것 같다.
삼라만상 우주만물 가운데 오직 생물들만이 숨을 쉬니 그 이름그대로 살아있는 물건, 생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식물은 밤낮으로 호흡작용 등 삼대작용을 번갈아 한다. 하지만 공기가운데 산소, 탄산가스와 물 등 물질을 얻어 살찌우고 활력소가 되어 살아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도 살아있는 한 숨을 쉰다. 이 공기를 동식물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급해주나 참으로 그 고마움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숨을 쉰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선한 공기 가운데 산소를 마셔야 살 수 있다. 잘 아는 일이지만 아무데서나 숨을 쉬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산소 외의 유해가스를 마시면 죽는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연탄가스 중독에 죽기도 하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여러 생활터전에서 빈번히 사망사고가 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태어난 즉시 숨을 쉰다. 태어났을 때 숨을 쉬지 않으면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자극하거나 인공호흡으로 숨을 쉬게 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맥도 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일 수밖에 없다. 성별, 연령별, 건강, 마음상태, 운동, 환경에 따라 변하고 다르다지만 보통 1분에 평균 숨쉬기 약 18~20회, 맥박이 약 74~80회 정도다. 숨을 쉬고 있으니 목숨이 붙어 있어야 살아있다고 한다. 숨을 쉬고 맥이 뛰지 없으면 끝이다.
그러나 그 길이는 다 같지 않다. 속담에 익은 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땡감도 떨어진다는 말처럼 병이 들거나 벌레가 괴롭혀도 떨어진다. 서로 좋은 빛과 색을 내려 햇볕을 많이 차지하려는 욕심에 자리다툼도 심하고 갑자기 불어 닥치는 폭풍우에 시달려 떨어지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도 떨어지니 참 알 수 없는 것이 감들의 신세다. 가을이 되어 주인의 추수하는 일손이 바빠지고 홍시가 된 몸으로 저절로 떨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핑계 없이 떨어지는 감은 없다. 이를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언제 숨쉬기를 멈추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까?
죽음은 순간이요 주검은 영원하다. 죽음에서 주검, 이 순간을 사람들은 임종이라 하여 매우 중시한다. 이 순간을 순탄하게도 어렵게도 맞이한다.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나는 이제까지 주변에서 이 순간을 겪어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물론 모든 생명체는 한 번은 꼭 맞이해야할 게 죽음의 순간이다. 이 죽음의 순간을 흔히 두려워하거나 염려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거치면 죽었다고들 한다. 물론 숨을 멈추면 다음 단계인 주검으로 간 것이다. 사람들의 주검은 어떻게 살아 왔느냐에 따라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 지위, 신앙, 업적에 따라 같은 주검인데도 승하(昇遐)니, 열반(涅槃)이니, 선종(善終)이니, 서거(逝去)니, 소천(召天)이니, 작고(作故니), 사망(死亡)이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로 표현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 죽음을 애도한 나머지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 존경하는 예우로서 부르는 말들이지만 더욱 그 주검의 처리와 대우도 천차만별이다. 이는 모두 사람들이 만든 한 과정의 분류일 뿐이다. 주검의 세계에서도 차별이 있을 수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종교라는 것들을 만들어 사후를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하지만, 저승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공평한 말인 “죽다” “죽었다” “돌아갔다” “돌아가셨다” 등이 있지 않는가?
숨을 멈출 시각을 모르는 사람들아! 어떤 이는 죽음을 미리 체험한답시고 법석을 떠는 이도 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주검의 평가를 미리 생각할 필요도 없고 지켜보면 그만이다. 이제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한 생을 되돌아보고 하나하나 깨끗이 정리해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또한 행복이라 할 것이다. 숨을 거두기 전에 생활주변을 정리하고 이승을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예기치 못한 죽음일 때는 별 수 없지만…….
아내는 가끔 책들과 너절한 물건들을 정리하라고 하는데 애지중지하던 그들을 차마 정리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되레 서운하다. 내 나이 벌써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미 몇 번이나 골라 처분하지 않았던가? 책은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고 너저분한 것도 아직 필요한 것들인데 성화다. 살다보면 가끔 찾아보아야 하고 써야할 일이 생기는 책과 물품들인데 버리라니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요사이 출구전략이란 경제용어가 금융위기 수습책으로 가끔 오르내린다지만, 내 인생의 출구전략에 정리라는 단어는 내게는 아직 이르다. 숨이 다할 때까지 필요한 것만 남겼다고 항변해 보지만, 막무가내(莫無可奈)다.
“여보, 나는 지금도 이렇게 건강하고 아직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지 않소? 그런데 왜 자꾸 정리하라고 성화시오?”
(200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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