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천안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김명희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천안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김명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02회 작성일 12-09-06 01:19

본문

천안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제2편)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명 희 9월의 문턱에 들어섰다. 기상이변으로 지난여름은 섭씨 35~36도로 무더웠다. 또한 사상 유래 없는 가뭄으로 대지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 생명수 덕에, 타들어 가던 동·식물들의 생명은 서서히 다시 활력을 찾았다, 모처럼 세상은 평온이 찾아왔다. 며칠 전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어김없이 찾아와 한반도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훌쩍 떠나가는 태풍. 강풍을 동반한 볼라벤이 할퀴고 간 길을 따라 덴빈이라는 동생격인 태풍까지. 그래도 비를 많이 동반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연의 위력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 일 년 농사를 망쳐버린 농민,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기업을 하는 사람들과 도시인들까지 맥없이 찢기고, 무너져 내리는 아픈 가슴과 깊은 상처에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조속한 수해복구로서 슬픈 마음이 하루속히 치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난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4박 5일 동안. 여름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외손녀 6명 중에 유치원생 6살 주연, 초등학교 1학년 세연, 3학년 하연,·수경 등 네 명이 수련원에서 열린 아이들의 유익한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오늘은 3일째 되는 날이다. 20여 가지 종목의 워크숍에서 우리가족은 ‘천안독립기념관’을 다녀왔다. 이곳에서 독립기념관으로 가는 교통수단으로 귀여운 꼬마기차가 등장했다. ‘우리가 동화속의 나라로 가고 있는 걸까?’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상에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기차 안의 에어컨은 자연바람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차창밖에는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더위의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약 20여분 걸려 독립기념관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광복의 상징인 겨레의 탑을 보면서 모두들 우~와~!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늘 높이 올라간 탑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면서, 벌어진 입은 다물 줄 몰랐다. “할머니! 저렇게 높은 탑은 무슨 탑이에요?” 하연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탑은 충혼탑이라 하기도 하고, 겨레의 탑이라고도 해.” “여기 좀 봐라, 이 탑은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쌍둥이 탑으로 조성되어 있지?” “독립기념관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하여 재미있고, 보기 쉽게 자료를 전시해 놓아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알리고 민주자주독립국가의 위상을 지키고자 설립되었단다.” “정말 탑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요.” “그렇구나. 높이가 51.2m, 도로에 있는 전신주의 간격이 약 50m라고 한다. 상상이 되지? 두루두루 잘 살펴보렴.” “양 옆면에는 무궁화가 새겨져 있어요!” “바닥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어요.” 저마다 한마디씩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남편의 의견에 따라, 산교육이 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에 아이들을 데려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애국자가 된 것 같았다. “저기 연못이 있어요. 우리 그곳으로 가요.” 세연이가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걸어가다 보니 독립의 다리가 나왔고, 다리 옆에는 백년 못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은 독립기념관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풍치가 있는 호수였다. 내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고운자태로 유유히 몰려다니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시간가는 줄 몰랐다. 호수위의 다리를 지나다보니,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는 태극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펄럭이는 태극기 앞에서, 갑자기 아이들의 두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주연이를 비롯하여 만세 삼창을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부부는 가슴이 뿌듯했다. 정말로 규모가 장엄하고 엄숙했다. 다시 한 번 나라사랑의 뜨거운 감격이었다. 순국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에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개관25주년! 천안독립기년관의 총 부지는 임야를 포함하여 약 120만 평이고, 건물은 64개동에 7천여 평이었다. 겨레의 집과 전시관이 있는 곳은 동쪽 부지를 중곡, 서쪽 부지를 서곡이라 하는데, 동쪽부지에는 국립청소년수련원이 있으며, 서쪽 부지에는 청소년현장학습장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표지석(標識石)을 스쳐 지나갔다. 겨레의 큰 마당이라고 써 붙인 독립기념관 앞마당에서 눈에 가장 띄는 것이 있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가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그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고 있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전쟁의 한 부분이요, 대한국의 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다.’ (중략)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읽어 보면서 독립기념관 건물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독립기념관은 제7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1관, 겨레의 뿌리 전시관 앞에 들어서자마자, 3학년 수경이는 필기도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들여다보며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수경아! 뭘 그렇게 적는 거야?” “할머니, 여름방학숙제로 체험보고서를 써 가야 해요.” 선사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문화유산과, 2~3관을 거쳐 외세의 침략을 슬기롭게 극복한 당시 선조들의 이야기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피맺힌 절규와 비극의 함성은,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었다. 비록 재현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인간 이하의 치욕을 당하는 독립투사들의 몸부림은 참으로 가슴 아팠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의 풍요와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어려움을 모른다. 나 역시 역사를 통해,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 속담에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했던가. 1관에서 6관까지 광복의 기쁨과 42인의 임시정부수립을 돌아보는 동안, 아이들과 옛날 사진관에 들어가 발로 스위치를 누르며 사진 촬영을 시도해 보았다. 수경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배고파요.” 우린 독립기념관 매점으로 들어가 구운 달걀과 음료로 간식을 먹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일본에게 당하기만 했어요? 속상해요. 선생님은 항상 착하고, 올바르게, 언어도 폭력이 된다, 말도 곱게 쓰라고 했어요.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은 막 욕을 하더라고요!” “너희들이 집에 와서 흥분했던 것처럼,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야. 가만히 있어도 괜히 헐뜯고, 건드리고. 시비를 거는 강력한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거야. 내 몸, 내 가족을 지키면서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호신술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는 거야. 그런데 그때는 우리나라가 힘이 약해서 일본의 침략을 받은 거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강력한 힘을 길러서 우리가 우리나라를 지켜야 된단다. 다시 이런 참상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야.” 나의 장황한 설명에도 신중하게 듣고 있는 아이들이 믿음직했다. “전쟁으로 황폐했던 나라.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또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일을 해서 이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 너희들이 고생을 모르고 사는 것도 열심히 살아온 선조들의 덕이야. 너희들도 자부심을 가져라. 알겠지? 세상에는 거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 “그럼, 힘을 기르려면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겠지요? 그래야 다른 나라가 침략을 못하겠지요. 우리 담임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연이와 수경이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아이들은 위인전을 많이 읽었지만 독립기념관은 처음이었다. 꿈과 낭만을 심어주는 수련원에서 축제의 한마당이 열렸다. 어린아이들부터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열정과 끼를 발산하여 일치를 이루는 잔치였다. 이곳의 마지막 밤은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고스란히 기억될 것이다. 피정을 다녀오면서 다시 내년을 기약했다. (2012. 9. 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