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란강을 건너 두만강 나루터에서/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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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강을 건너 두만강 나루터에서
-장춘/백두산 여행기(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나는 일본인들의 등쌀에 못 견디고 한반도에서 이주한 조선족들의 무대, 간도지방을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 멀리서 가물거리는 일송정, 우리민족이 개척할 때 생명의 젖줄이었던 해란강은 묵묵히 흐르며 아픔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남의 땅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인들의 텃세를 참아내야 했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왜인들과 싸우며 만주벌판을 누비고 다녔을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우리민족이 90% 이상 거주하고 있다는 용정시에 소재한 대성중학교를 찾았다. 윤동주 선생의 시비(詩碑) 앞에서 누군가가 ‘선구자’를 시작하니 모두 따라 불렀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 (중략).
숙연해진 발걸음으로 대성중학교에 들어서니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북쪽지방 특유의 말씨로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주초기 조선족의 생활상, 민족교육의 선구자들, 연변의 6개 민족학교, 용정에서 전개된 항일운동, 안중근 의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상설 기념관을 둘러보며 지난날의 역사를 되새겼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겪지 말아야 할 텐데. 요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기부하고 오려니 계면쩍었다. 그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아니었던들 오늘의 한국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죄송했다.
다음은 연길로 이동해 전통 마사지를 받았다. 한 방에 5명이 들어갔다. 잠시 후 마사지사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한 쪽 팔부터 주무르기 시작했다. 몸만 내 맡기기도 분위기가 이상해서 마사지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 의사전달을 해봤지만 목석을 바라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세 가지 말을 해봤지만 알아듣는 말은 한 가지 뿐이었다. 아프다고 할 땐 “토옹”, 간지러우면 “이용”, 시원하다고 할 땐 “쇼옹”을 던져 봤지만 알아듣는 말은 “쇼옹”뿐이었다. 그들이 한국말을 한답시고 시원하냐고 묻는 말이 “시끔해요?”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나중에야 눈치를 채고, “아유 시원하다!”를 해줬더니 좋아했다. 상호간 의사소통이 되면 그들도 좋은 모양이었다. 후에 가이드에게 들었는데, 흑족이라는 소수민족이며, 주민증을 발급받지 못해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3일째 되는 날은 두만강을 조망할 도문시로 이동했다. 강가에 다가가니 ‘國境’이라고 씌어 진 붉은 글씨로 된 푯말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도 소름이 끼쳤다. 도문시의 강변에 자리한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늘 밑에서는 장기, 마작, 카드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우리가 말을 거니 반가이 대답해 주었다. 동포애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가수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의 가사가 생각났다. 그런데 ‘두만강 푸른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었다. 뗏목 형 유람선을 타고 푸르렀던 강물을 상상하며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도중에 북한군 소년병사 두 명이 초라한 행색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보여 안타까웠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거무스레한 화물자동차가 있었다. 또 철로 밑을 지날 때, 중국 쪽의 자유롭고 화려한 모습과 달리 북한의 산야에 폐가처럼 변화된 가옥들이 보여 대조적이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용정시를 비롯한 간도지방, 이념이 다른 체제에서 얽매어 사는 북한병사와 산야를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빠졌다. 간도지방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연길시 같은 경우는 생활수준이 꽤 높게 보였다. 이곳에도 강남과 강북이 있을 만큼 빈부의 차가 있다고 하니 알만 했다. 그러나 사방팔방이 꽉 막힌 북녘 땅은 언제나 열릴지, 그 속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인지 가슴이 아팠다.
한두 사람의 정치 지도자들의 탐욕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철의 장막 북한, 하루 속히 문호를 개방하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불쌍한 동포들이 배고픔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구문화를 몸에 익힌 김정은이 문호를 활짝 열어 우리민족 모두가 잘사는 길을 닦아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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