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고택과 고가/김상권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고택과 고가/김상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46회 작성일 09-09-30 21:59

본문

고택(古宅)과 고가(古家) -우리문화 다시 보기 : 고창편(2)-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고창읍성 입구에 자리한 동리 신재효(1812~1884)의 고택을 찾았다. 흔히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자형의 초가집으로 일반 서민들이 살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규모가 좀 크다고나 할까. 가옥 자체보다는 아마도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자 지방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아닐까. 스승을 중심으로 학동들이 빙 둘러앉아 판소리를 공부하는 모습을 재현한 방을 보았다. 스승이 먼저 부르고 학동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뒷날 훌륭한 소리꾼이 되었으리라. 신재효는 자신의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판소리를 배우고자하는 후학들을 모아서 재워 주고 먹이면서 판소리 전문교육을 실시했다. 한편 명창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판소리 4대 법례를 제시하는 등 이론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당시 판소리는 열두 마당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6마당을 골라 그 사설을 개작(改作)하여 정착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판소리 정리자’, ‘판소리 후원자’라고 부르고 있다. 고창 도신리에 위치한 보정 김정회(1903~1970)의 고가를 찾았다. 마을길에서 안채까지 가는 돌담길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리가 10m, 폭이 5m쯤 돼 보이는 돌담길에 잔디가 깔려있었다. 양쪽에 돌담이 쳐 있고 담벼락 밑에는 난초 비슷한 꽃이 피어 있었다. 대문에 이르기까지의 돌담길 운치는 김정회 고가 최고의 걸작이었다. 나는 이 돌담길에 반해버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에서 일하던 70대 초반쯤의 교양이 있어 보이는 안주인이 우리를 맞았다. 이 집이 바로 보정 김정회가 고조(古祖) 때부터 살아온 집이란다. 그 여인의 말에 따르면 이 집은 약 327년 전에 지은 것으로 기와집인 안채는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채의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와 행랑채, 문간채 그리고 안채 양쪽으로 곳간이 1동씩 있고, 안채 뒤로 사당이 있었다. 당시 많은 식구들과 방문객들로 집안은 왁자지껄했으리라. 안채 뒤꼍의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이다. 안주인이 우리 일행을 곳간으로 안내했다. 조상들이 사용했던 여러 가지 골동품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는데 그 가운데 큰 항아리가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서너 개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전에는 3천 석을 그들 항아리에 보관했다고 하니 당시 상당한 재력가였음을 짐작케 했다. 곳간을 나오니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사찰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른바 돌 세숫대야다. 팔각형으로 된 돌에 홈을 파고 물을 담아 손을 씻도록 해 놓은 것이었다. 옆면에는 일심(一心)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가옥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한 면을 보는 듯했다. 김정회는 안동김씨로서 성균관대학교 전신인 명륜전문학원에서 경학( 經學)을 가르친 대학자이자 서예가였다. 그의 난과 대나무는 일품이었다고 한다. 상류사회 출신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고 주위 사람들을 깨우치고 이끌어준 분이란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두 사람이 비교가 되었다. 신재효의 고택과 김정회의 고가는 둘 다 지방문호재로 등록돼 있다. 왜 이름을 달리 붙였을까? 신재효는 중인 출신이고 김정회는 양반 출신이다. 두 집은 한옥초가집과 기와집, 집의 꾸밈새와 크기, 세간이 비교가 되었다. 신재효는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정리자, 후원자이고, 김정회는 대학자이며 서예가였다. 신재효는 판소리 분야에, 김정회는 유학에 발자취를 남겼다. 누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고, 누가 더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했으며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두 분의 가옥을 답사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난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내 소유로 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생가는 남기지 못하리라. 그렇다고 사회나 국가에 크게 공헌한 것도 없다. 그러니 내 흔적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도 남길 것은 있지 않을까하고. 수필집을 내면 그것이 바로 나의 기록이며 발자취가 아닌가. 수필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번하지 않았는가. 오늘따라 수필이 고맙고 수필을 공부한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2009. 9. 15.) *판소리 12마당 : ①춘향가 ②심청가 ③흥보가 ④수긍가 ⑤적벽가 ⑥변강쇠가 ⑦배비장 타령 ⑧옹고집타령 ⑨강릉매화전 ⑩장끼타령 ⑪무숙이타령(왈자타령) ⑫가짜 신선타령 *판소리 6마당 : ①춘향가 ②심청가 ③흥보가 ④수긍가 ⑤적벽가 ⑥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 *판소리 4대 법례 : ①인물치레 ②사설치레 ③득음 ④너름새 *경학(經學) : 유교의 전통파의 학문 *고택 : 옛날에 지은 집 *고가 : 지은 지 오래된 집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