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사실과 진실/김학철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사실과 진실/김학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16회 작성일 12-06-24 03:51

본문

사실과 진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학철 전주안골수필반 김 학 교수님의 수필, ‘세네갈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을 감명 깊게 읽었다. 15,6세기 유럽 각국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전역의 흑인 2천만 명을 붙잡아 유럽이나 미국에 팔았고,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질병이나 구타 등으로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당시 백인들의 잔학성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공분을 금할 수 없었다. 인종과 색깔 그리고 교육수준만 다를 뿐 흑인이나 백인이나 다 같은 인간일진대 오로지 자신들의 탐욕만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이다지도 깡그리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내에게 이 수필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녕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아내의 말이 이런 일은 ‘노아의 저주’ 때문이었다며 ‘구약성서 창세기편’을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창세기편’을 읽어보니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를 극복해 낸 ‘노아’는 그 뒤 포도나무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하체를 드러내고 자는 실수를 한다. 그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섬기며 매사에 올곧은 생활을 해오던 ‘노아’도 한 인간이었는지 하체를 내보이는 추태를 보이고 만 것이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 등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둘째아들 ‘함’이 벌거벗은 채 자고 있는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목격하고 이를 형인 ‘셈’과 동생인 ‘야벳’에게 떠벌리며 흉을 본다. 이에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뒷걸음으로 들어가 장막 속에서 자는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덮어준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격노하여 둘째아들 ‘함’의 자손들은 ‘셈’과 ‘야벳’ 자손들의 종의 종이 되라는 저주를 하고 그 대신 자신의 하체를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내려준다. 세월은 흘러 장남 ‘셈’의 자손은 이스라엘, 중동, 아랍계, 소 아시아계 족속 으로 번창하고, 셋째아들 ‘야벳’의 자손들은 유럽 각국의 백인들로 번창하며, 둘째아들 ‘함’의 자손은 아프리카 흑인, 애급족속으로 번창한다. 따라서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백인들에게 끌려가 매매되는 것은 결국 ‘함’의 후손이 동생 ‘야벳’의 후손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셈이다. 나는 이 성경 구절을 읽고 둘째아들 ‘함’이 아버지 ‘노아’에게 잘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 잘못에 비하여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생각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던 나는 2년 전 우연히 한 기독교TV에서 시청했던 전국적으로 유명한 J목사의 설교가 새삼 떠올랐다. 설교 주제는 ‘사실과 진실’이었다. 사전(辭典)대로라면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거나 실제 로 있었던 일’이고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으로 얼핏 보기에는 양자 간에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둘째아들 ‘함’의 경우 자기 가 본 사실을 있는 그대로 흉보거나 떠벌리는 행위로 ‘사실행위’(事實行爲)에 속하여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받은 반면, 똑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상대방의 흉, 허물, 실수 등을 덮어주거나 감싸주는 일은 진실(眞實)에 속한다고 했다. 즉 ‘진실은 사실에다 사랑을 보탠 것’이라고 기독교적인 해설을 하며 따라서 진실(眞實)한 행동(行動)을 한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祝福)이 내려졌을 것 이라며, 우리 인간은 모름지기 사실적인 언행보다 진실된 언행을 하며 세상 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 뒤 나는 가만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 역시 ‘함‘처럼 남의 흉이나 허물, 실수 등을 즐긴 일이 없었던가?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혼자 즐기는 것도 모자라 주위사람들에게 떠벌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함’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이런 일은 부메랑이 되어 어느 날 내 등에 꽂힐 수도 있고 아니면 훗날 내 아들딸과 손자손녀 등 자손들에게 저주가 되어 ‘함’의 후손인 아프리카 흑인보다도 못한 더 가혹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엄습해 옴을 느낀다. 앞으로는 남의 흉이나 허물은 덮어주고 감싸주는 대신 남의 잘한 일, 좋은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생활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2012. 6. 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