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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외손녀/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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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82회 작성일 12-06-24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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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외손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학철 우리 내외에게는 금년 11살 난 초등학교 4학년인 외손녀가 하나 있다. 시집간 큰딸애가 나은 외손녀인데 이름은 조은율이다. 우리 내외와 외손녀와의 관계는 좀 남다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은 출산일이 다가오자 친정인 전주로 내려와 M산부인과에서 출산한 뒤 신생아인 외손녀는 강보에 쌓인 채 우리 집으로 오게 되어 약 5년간 외할머니가 키우게 되었다. 약 14개월간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기간이 지난 딸은 서울에 있는 원래의 직장에 다시 복직하게 되자 이들은 직장관계로 별 수 없이 주말부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위의 부모는 7~8년 전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셔서 안계시기 때문에 신생아의 양육은 도리 없이 친정 몫이 되었던 것이다. 외할머니는 산모를 대신하여 신생아에게 하루 세끼 분유와 간식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며, 열이 많아 칭얼대면 뱀새워 팔베개에 뉘여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그야말로 온갖 심혈을 기우려 외손녀를 돌봤다. 외손녀 역시 외할머니를 잘 따랐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자기 엄마아빠보다 오히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더 잘 따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어린 손녀의 말 한마디, 태도 여하에 따라 어른들이 울고 웃게 되었다. 외손녀가 네 살 때 옆 동네인 ‘아중리’에 있는 ‘H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린이집에서 돌보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우리 내외는 이 어 린이집에 손녀를 맡기고 나와 보니 이 집 정문 외벽에 커다랗게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외할머니처럼 잘 돌보겠습니다!’였다. 순간 우리 내외는 서로 마주보고 한참 생각했다. 왜 그냥 ‘할머니’ 또는 ‘엄마’같이 잘 보살피겠다고 하지 않고 굳이 ‘외할머니’라고 했을까? 며칠 뒤 아이를 데리러 갈 일이 있어 원장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이에 원장 말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외할머니가 그냥 할머니보다 훨씬 더 정겹잖아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외할머니를 주제로 한 시(詩)는 많은데 그냥 할머니를 주제로 한 시는 드물다. 충남 부여에 갔을 때 ‘외할머니 식당’이란 음식점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냥 ‘할머니 식당’은 보지 못했다. 대폿집도 ‘이모네 집’은 봤어도 ‘고모네 집’이라는 상호는 보질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정이 깊은 탓이려니 싶다. 모계혈통인 이모나 외할머니가 부계혈통인 고모나 할머니보다 더 정이 가는 게 아닐까? 약 2년간의 어린이집 생활을 마친 외손녀는 할 수 없이 약국을 정리하고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 취업한 아빠를 따라 가게 되어 마침내 엄마아빠 그리고 외손녀는 서울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외할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발버둥치는 손녀가 떠나던 날, 외할머니는 그간 5년간 정성을 다해 키운 외손녀와 이별 하게 되자 순간적으로 사랑을 놓친 기분이었는지 “제 새끼는 제 부모가 키워야지!” 하면서 체념했다. 서울로 간 외손녀는 곧장 유치원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아내는 서울에 볼 일이 있어 딸네 집에 가게 되었다. 가기 전날 내일이면 외손녀를 만날 텐데 손녀의 반응은 과연 어떨지 상상하며 설레고 들떠 있었다. 이윽고 다음날 아내는 서울 갔다가 딸네 집에서 하룻밤 묵고 그 이튿날 오후 전주로 돌아 왔다. 집에 돌아온 아내의 얼굴 표정이 시종 어둡고 시무룩했다. 나는 아내 가 장거리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 피곤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은율이를 만나니 반갑게 대하더냐고 물으니 아내의 답변은 천만뜻밖에도 그 아이를 만나니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하더라며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이에 나는 아마 너무 어리고 환경이 바꿔져서 미쳐 할머니를 못 알아본 것이니 자주 다니다 보면 안 그럴 거라며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2개월이 또 흘렀다. 이번에도 아내는 서울에 갔다가 딸네 집에서 역시 하룻밤 묵고 전주로 돌아왔다. 이번엔 전번과는 달리 만면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싱글벙글했다. 서울 가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아 글쎄, 은율이가 나를 보자마자 매우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하지 않아요?” 손녀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주고 전주에 오려고 헤어지려니까 은율이는 같이 살자며 급기야 울기까지 하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 뒤 1~2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갈 때마다 이런 일은 반복되어 나중에는 아예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살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사는 아파트단지로 이사를 오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전주 할머니 집으로 따라가 같이 살겠다며 헤어질 때는 늘상 울음보를 터트린단다. 이제야 은율이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찾고 옛정을 못 잊어 하는 것인가! 또 초등학교 저학년시절 오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피아노, 영어, 미술학원 등을 전전하며 오후 6시 30분까지는 학원생활을 하다가 퇴근한 엄마아빠를 따라 자기 아파트로 돌아오기 때문에 어린 것의 낯선 서울생활이 힘들고 외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외할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눈물짓는 모습을 보면 미묘한 행복감을 느낀다. 참으로 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행복감을 찾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뒤 또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2년 여름방학 어느 날 전주 집에 엄마와 같이 온 은율이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손가락으로 외할머니를 가리키며 야릇한 미소와 더불어 하는 말이 “할머니는 가짜 할머니지?”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우리 내외는 말문이 막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순간 아내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니 안색이 변하며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에 나는 외손녀에게 ”누가 그런 소리 하라고 하더냐? 그러면 할머니는 다시는 너희 집에 안 간다.“ 했더니 손녀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 애가 없을 때 우리 내외는 아마 학교에서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 할머니만 ‘진짜’고 외할머니는 ‘가짜’라고 하는 말을 듣고 와서 철없이 지껄이는 것 같다며 서로 위로했다. 그 뒤부터 은율이는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예나 다름이 없다. 할머니는 은율이 손을 이끌고 백화점에 들러 은율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줄 때도 종종 있고 지난겨울에는 털실을 사다가 은율이의 상의와 목도리도 짜주기도 했다. 할머니가 서울 딸네 집에 가서 은율이를 만나거나 또는 명절 때 등 은율이가 전주에 왔다가 헤어질 때는 늘 헤어진 것을 아쉬워하며 꼭 눈물 바람을 한다. 지난 3월 대전에서 있었던 조카 결혼식 때도 만났다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이고 버스가 출발하여 전주로 올 때는 은율이가 보낸 휴대폰메세지가 떠오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안녕히 돌아가세요.” 요즈음 우리 내외는 주 3회 정도 은율이가 통화한다. 휴대폰을 돌려가며 은율이와 통화를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재미로 산다. 그저 우리 내외는 은율이가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201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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