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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탄에 사라진 명사수/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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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89회 작성일 12-05-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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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탄에 사라진 명사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신구 ‘따쿵, 땅!’하는 소리가 난 뒤 연이어 ‘따쿵, 따쿵, 따르릉, 따르릉’ 총소리가 연이어 나고, 모정 위로도 핑핑 총알이 날았다. 나중에 보니 모정 기둥에도 총알이 스친 흔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그날이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모정아래에서 흙투성이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시 상황은 공포탄에도 쫓기는 퇴각하던 국군이, 인민군과 한 바탕 붙었던 것이다. 때 아닌 총성에, 소꿉놀이 하던 우리는 물론 모정의 어르신들과 인근 동네사람들까지 혼비백산했고, 모정 주위의 다박솔과 묘 뒤에 머리를 박고 숨었다, 총소리가 뜸해 고개를 드니, 춘섭이 할아버지는 길바닥에 배를 깔고 생똥을 쌌다는 소문이 났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 총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놀랐는지 옷에 오물을 지린 친구들도 있었다. 총알이 우리를 피해갔는지,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라긴 했으나, 잠시 뒤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날 이후 모정 둘레에는 가마니와 새끼줄을 쳐 놓고 출입을 금지하였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무서워 눈을 가리고 보지도 못했던 애들이, 잘도 교전 이야길 지어내고 있었다. 궁둥이에도 눈이 달렸었나? “그 국군(소위), 총상이 여러 군데라지만, 참 재수 없게도 그래 하필 그 시계추에 명중했대, 총 쏜 놈이 1등 명사순가 봐…….” 내 앞에 가는 선배들은 말도 다하지 못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 속에는 온몸에 총상을 입은 국군소위가 있었다고 하는 데, 총상이 너무 심해 마을 의원할아버지가 몇 가지 단방 약 처방을 했으나, 얼마 뒤 숨을 거두었단다. 동네 어른들이 매장해 주었고, 수복 후 전우가 찾아와 돌봐준 분들에게 사례하고 국군묘지로 이장을 했다. 지난번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 를 감상하면서 내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영상이 겹쳐졌다. 우리 가족은 영화 감상이 끝나고, 노인병원에 입원한 당숙모를 찾았다. 전 보다 많이 나아지신모습을 보면서 내가 오촌에게 들은 전쟁실화가 생각났다. 전쟁이 한창인 그 무렵, 당숙(堂叔) 형제도 징용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당숙형제는 내혁(來赫), 을내(乙來) 아저씨다. 손이 귀한 우리 집안은 6대 외아들, 5대째 형제만 두었다. 그나마 장손은 형제를 유지하나 지손들은 외아들 아니면, 손이 끊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당숙이 가까운 친척이다. 그 당시 우리들은 전쟁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었다. 당숙들은 백마부대에 소속되어, 휴가 때나 제대 후에 졸라대는 어린 조카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휴전직전의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철의삼각고지 전투’ 이야기와 ‘백마고지 전투’ 무용담을 들려주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시각각 주인이 바뀌는 고지공방전, 칠흑 같은 밤, 백병전이 벌어져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어 번쩍이는 포화에 흘깃 보고, 가늠하거나 머리를 더듬어보아 짧게 민 민둥 머리는 적군이요, 덥석 머리는 아군으로 판단하여 단검으로 찔러대는 긴 밤을 육박전으로 지새고 나면, 주변에 핏물이 빗물 흐르듯 했다고 한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천행으로 살아남았으나, 같이 죽기를 맹세했던 옆 자리 전우는 찾을 수 없고 충혈된 벌건 눈들은 피곤에 젖었으나, 잠이 오질 않아 술만 찾았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참전하고 휴전이 되자, 일등중사와 이등중사계급장을 단채 무공훈장을 목에 건 형제는 당당하게 제대하여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두 분은 그리운 고향 부모님을 반갑게 맞았으나, 제대 후 얼마 가지 않아 가난과 싸워야 했고, 사회의 냉대 속에 마음의 안정을 못 찾고 헤맸다. 권세있고 부유하며 많이 배운 이들은 군대도 가지 않은 채, 부귀권세를 구가하며 큰소리 치고 사는 사회,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대가가 이렇게 냉시(冷視)를 받아야하나, 하는 울분이 겹쳤을 것이다. 육박전을 벌였던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잔상과,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다짐했던 전우의 죽음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영웅시하던 대접이, 가난한 건달로 바뀌자 울컥하는 심정에 작은 일만 생겨도 신경이 곤두서고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대응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방황하다 큰당숙은 어느 겨울날, 초상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냇물에 실족사하셨다. 작은당숙은 제대 후, 무공훈장덕에 전주 전매청에 경비반장으로 취업되었고, 성심여중을 나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아가씨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직장과 가정의 행복도 잠시, 근무하면서 보니 재력과 권력을 동원하여 법망을 피해 군대를 기피한 자가 상사로 근무하며, 거드름을 피우고 공공연하게 부정을 저지르고도 큰소리를 치는 게 아니꼽고 화가 나서, 울분과 다툼, 폭행으로 이어져 빈축을 사게 되었단다. 정의감에서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면 바로 잡기는 커녕, 고발자로 낙인 찍혀 징계로 돌아왔다고 한다. 전투엔 용감했고 전장에서는 1등 명사수였으나, 사회에 나와서는 헛방만 쏘아대다가, 기피자의 공포탄에 쫓기는 꼴이 되었다. 거기에 가정불화까지 휘말려 방황하다가 사회를 비관하고 가출하여 행방불명자가 되었다. 요즘 말하는 치열한 전투를 겪은 정신적 충격과 정의감, 유전무죄(有錢無罪)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나 싶다. 치매로 시달리는 당숙모를 문병하면서, 불우했던 두 분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옛날을 생각해 보며 우리 사회가 밝은 미래와 정의로운 사회로 변하고, 불우한 이웃을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2.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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