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어 본 양복/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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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어 본 양복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처음으로 양복을 맞추어 입었다. 새로 옷 한 벌씩 해 입자며 단체로 교섭하여 김제 신광테라에서 맞춘 것이다. 새로 해 입으니 옷태가 나 한결 돋보였다. 한국전쟁을 치룬지 얼마 안 될 때 교원들은 거의 허름한 옷밖에 없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섰으나 반반한 옷 한 벌이 없었다. 나는 익산시장에서 값싼 기성복을 사 입고 부임했다. 우중충한 색깔에 윤기 없는 옷이 꾀죄죄했다. 웃옷은 호주머니 근처가 뭉쳤고 바지는 무릎 쪽이 내밀어 보였다. 여름방학 과제로 교육 자료를 만들어 냈더니 교육감상을 받게 되었다. 정장을 하고 상을 받으러 갔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볼품이 없었다. 나이 많은 전월순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양복 한 벌 있었으면’ 했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다.
여름에는 와이셔츠 한 벌로 지냈다. 더우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시원할 때는 펴서 입고 살았다. 바지는 군복에 검정물감을 들인 것을 입었다. 그것도 여러 벌이 아니고 단벌이었다. 잘 사는 사람을 빼고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 멋이 있으라고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려고 입었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 깊어갔다. 김제에서 통근하는 정성웅 선생님이 양복을 새로 맞추어 입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했다. 모두 찬성하니 신광테라 사장이 샘플을 가지고 왔다. 제일모직은 비싸고 경남모직이 좀 쌌다. 뒷줄이 당기는 형편에 좋은 것을 치켜들지 못했다. 색깔이 청록색 천을 선택했다. 젊은 때이니 그게 좋게 보였다. 검정색을 택한 사람, 줄무늬가 있는 천을 선택한 사람 등 여러 가지였다. 처음으로 바지와 소매길이, 어깨 너비, 허리 품을 쟀다. 가봉날짜를 정해 여럿이 가서 입어 보기도 했다.
며칠 있으니 양복을 가지고 와서, 교무실에 모여 입으니까 환해진 느낌이었다. 모두가 새 인물로 보이고 멋이 있었다. 의복이 날개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새 옷을 입고 힘차게 걷고 싶었다. 동료들 결혼식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다니고 가정방문을 하거나 초대받아 갈 때도 당당했다. 그 옷을 오래오래 소매 끝이 닳아서 보기 흉할 때까지 입었다.
한 달 봉급으로는 양복 값을 다 줄 수 없어 석 달 할부로 치렀다. 처음 입어본 양복이라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요즘이야 몇 만 원만 주어도 멋진 양복을 살 수 있지만 그때는 그만큼 귀한 옷이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시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요즘은 옷장에 옷이 여러 벌 걸려있다. 오래된 것은 버렸는데도 많이 남아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많다.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다 버렸어도 첫 번째로 맞추어 입은 옷과 결혼 예복으로 받은 옷은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없으니 아쉽다.
문학관이나 박물관에서 옛날 어른들이 입던 옷을 전시하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후손들이 그렇게 귀히 보관했으니 남아있는 게 아닌가. 보잘 것 없는 촌부에 불과하지만 처음 입어 본 옷을 없애버려 서운하다.
요즘은 옷이 수없이 만들어져 나온다. 값도 싸고 모양과 색깔도 아름답다. 흔하고 값이 싸서 국민들 누구나 좋은 옷을 입는다. 물론 한 벌에 수백만 원 가는 옷도 있다지만 그게 보통사람들의 옷은 아니다. 이렇게 좋은 옷을 유행이 지나면 한 번 입고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옷 한 벌 가지고 몇 년을 입던 옛날을 생각하고 아껴 입었으면 좋겠다.
버리는 헌옷을 모아 헐벗는 나라에 보내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길가에 헌 옷을 모으는 통이 여기저기 있지 않은가. 옷을 재활용하기도 하고 남을 돕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가.
( 2012. 3.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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