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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용장산성을 찾고서/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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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61회 작성일 12-04-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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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용장산성을 찾고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진도나들이에 나섰다. 총선이 끝난 주말! 전북문협문학기행으로 사연 많은 보배 섬 진도를 찾은 것이다. 화창한 날씨다. 활짝 폈던 동백꽃은 벌써 지는데, 잔잔한 바닷바람은 후박나무와 비자나무 잎을 간질였다. 아는 것 없어 이곳 관광해설사의 말을 빌린다면 한마디로 싸움의 격전지요, 국난에 남자들의 수난과 주민들의 시달림의 현장이 진도란다. 하지만 벼슬아치들의 귀양살이 덕에 진도는 “자랑마라 시서화창(詩書畵唱)”으로 이름난 고장이 됐단다. 두루 거쳐 용장산성에 이르렀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남아있으나 원형은 사라진 상태다.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내에 용장사지와 행궁지가 있고 천제를 지내던 제단도 보존되어 있다. 희생자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항몽충혼탑, 상징적 조형인 기마무사들, 석각된 설명문 등 시설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용장산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길이가 13km가량이고 높이는 약4m 내외라 했다. 이곳은 고려 원종(AD1270) 때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還都)한 때다. 이에 반대한 삼별초는 해산(解散)명령에 불복하여 진도로 내려와 왕족인 6촌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옹립하고 항거하였는데 그들은 고려 장군 배중손(裵仲孫)이 이끈 군대였다. 진도를 근거지로 관군과 몽고군에 항전한 산성으로 남해안 일대를 지배했다 한다. 영령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찌하여 이 길을 택하셨나요? 이제 편히 영면하소서!” 우리 일행은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위령탐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가치관의 차이랄까, 민족의 자존심, 해산조치에 대한 불만? 명분은 항몽(抗蒙)투쟁이었지만 분명 고려조에 반기를 든 모반군(謀叛軍)이었다. 더욱 싸움에 패배한 남은 세력은 제주도까지 밀려갔다. 김통정(金通精) 일행은 결국 여몽(麗蒙)연합군에 의해 섬멸되었다. 실패한 반란군이 영원한 역적을 면하고 이제 당당한 민족의 항몽군으로 격상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불과 740 여 년 전의 일이다. 뒤이은 국란으로는 임진왜란(1592~1597)과 병자호란(1636)도 겪었다. 싸움은 고난이었으나 마침내 이겨 승리로 끝났다. 이로 인하여 진도는 격전의 전적지(명량대첩, 벽파진 전첩비)가 되었다. 병자호란은 주화파니 척화파로 갈려 삼전도(三田渡:松坡)의 치욕 끝에 척화파란 이유로 이국땅으로 끌려갔다. 또 전세기(前世紀)에는 집요한 일본의 침략야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훈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갈등하다 동학란을 겪었고, 혁신과 발전의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은 한일합방이란 치욕을 당했다. 독립투쟁을 했으나 남의 힘으로 얻은 조국광복이었다. 남과 북의 분열로 동족상쟁의 한국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이는 타고난 지정학적 약소국의 설음이었다. 세월은 흘러 역사는 재조명되었다. 삼별초의 난이 항몽투쟁으로,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4․19의거(義擧)가 4월 민주혁명으로, 5․16이 군사쿠데타로, 5․18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호칭마저 바뀌었다. 지난 위정자의 시각과 후세의 사학가의 시각은 분명히 달랐다. 시각차, 입지 차, 시공의 차이인가? 정치에도 만고의 불변의 원리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정치가 있을 수는 없을까? 후세의 정권들은 고작 추모와 위령시설만 만드는 뒷북치는 위정자가 되어야만 할까? 성공한 반정행위는 권력을 잡고 실패한 반정은 영원한 역적이 된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성지를 떠나오면서 아이러니(Irony)한 인간사를 되돌아보았다. 살다가 돌이켜 보면 때로는 실수를 한다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보면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행동이었고 언젠가는 그것이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내 딛던 발걸음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경우도 있다. 삼별초와 고려왕조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동양의 성인은 예기(禮記)에 군사부(君師父) 일체론을 주장한 바 있다. 임금을 섬기는 데는 숨길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거역도 할 수 있다. (사군:事君은 유은유범:有隱有犯), 스승을 섬기는 데는 숨겨서도 아니 되고 거역할 수도 없다. (사사:事師는 무은무범:無隱無犯), 어버이를 섬기는 데는 경우에 따라 숨길 수는 있으나 거역할 수는 없다. (시부:事父는 유은무범:有隱無犯), 등이다. 인간사(人間事)가운데 이 세 대인관계는 세월은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만고의 진리요 원리다. 삼별초의 항몽은 이에 따랐겠다. 세상과 정치는 괄목한 발전으로 인류사상 최고의 정치를 펼쳐가고 있다. 모든 인류 만민이 편안하고 잘 살게 할 수 있는 정치, 아직 좀 미급하지만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민의, 국민으로부터, 국민을 위한 정치다. 세월이 흘러도 재조명이란 필요 없는 최상의 정치. 지금 이루어진 일들이 세월이 흘렀다 해서 평가가 다를 수 있는 아이러니란 이제 허용될 수 없다. “좋은 세상”(가수: 윤수자)이란 노래가 있듯 즐거운 진도구경을 잘 다녀왔다. 주선해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여러 문인들도 좋은 글감을 잡았으면 좋겠다. 넓던 지구가 더욱 좁아졌다. 일찍이 이런 좋은 세상은 없었고 상상도 못한 채 살아 왔다. 정치를 떠나 살 수 없고 총선은 끝났으나 대선을 앞두고 있다. 좋은 세상 만들기는 우리 손에 달렸다. 지난날과 같은 참혹한 국란을 다시없게 하려면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 만고불변의 후회 없는 정치를 할 수 있게 말이다. (201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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