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방귀 뀌었다/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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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방귀 뀌었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신구
방귀! ‘방귀 뀐 놈이 성 낸다’ 는 속담이 있지만, ‘점잖은 분이 방귀를 뀌고, 좋아하며, 또 옆 분들이 칭찬하는 경우’ 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가 이제 칠순이 됐지만, 단 형제뿐인 우리 형님은 84세이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같이 모시는 처지라, 형님의 명령이면 나는 꼼작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 살 이상 연령차도 있지만 아버지가 어려서 돌아가시고, 형님은 군대생활을 하셨기에 오랜만에 권총을 차고 휴가를 오시면, 보고 싶었던 생각은 어디로 싹 가시고, 죄진 적도 없는데 무서워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직장생활로 집을 떠난 뒤 형님이 제대를 했으니, 그저 군대식 명령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종중(宗中)시제에 동행하자는 전화를 받고 열일 다 제치고 따라나섰다. 형님은 전주이씨 태조대왕의 3남 익안대군(芳毅)파 종회장인데, 몸도 늙고 병들어 오늘까지만 회장직을 하고, 인계한다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이 종중시제에 모이는 분들은 거의 칠순 이상이고 젊은 사람들은 한 참 찾아야 할 처지다. 전통제례를 이어가야 할 터인데, 몇 년 뒤에는 홀기(笏記)나 축문을 쓰고, 읽을 사람이 드물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시면서, 제일 앞자리에서 지도 조언을 하셨다.
“제 자손 참신재배(諸 子孫 參神再拜)”
"뿅, 뿡!"
한참 제사가 엄숙히 진행되는데 방귀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글쎄 제일 앞자리 종회장이 방귀를 뀌었으니, 젯상 아랫줄 뒷자리 종현(宗賢)들만 소리죽여 ‘끌 끌 끌’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앞에 삼헌관(三獻官)과 집사, 독축(讀祝)하시는 분들은 내색도 못하고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면 자연 발생적 생리작용을 어이하랴. 선고선현(先考先賢)과 묘정행렬(廟廷行列) 종현들도 널리 통촉하시길 빌 뿐…….
귀갓길에 왜 하필 그 시각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하자, 사실 요즘 방귀가 잦고 대소변에 문제가 있어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봤더니, 내일 입원해서 대 수술을 받으라고 해서 입원하러 간다고 하셨다. 너무 놀라 더 묻지 못하고, 조카에게 알아 봐야겠다 생각하며 귀가했다.
수술 전날 병원을 찾았다. 형수, 조카 등 몇몇 가족이 입원실 침대 둘레에 앉아, 그리 밝지 않은 기색으로 무슨 이야긴가 조용히 말들을 나누는데 분위기는 무거웠다. 내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어제 방귀사건을 침소봉대하여 말하자 병실사람 모두가 웃었다. 형님은 어색한듯 금식에 관장을 해서 배가 아프다면서 그만 웃자고 하셨다. 그래도 내색은 않지만 마음은 걱정에 싸여 있는 듯했다. 전신마취로 5시간 이상 걸릴 거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대수술을 앞둔 마음들이야 오죽하랴. 형님과 식솔들은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형님이 안계시면 내가 집안 어른이 된다’ 는 두려움과 ‘우리 집안에 팔순 이상 사신 분이 별로 없음’에 섬뜩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옛날 팔순이라면 요즘은 아흔 살도 더 사시는 건데’ 하며 가슴을 쓸어 넘겼다. 걱정스런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일찍부터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나는 수술이 잘되길 빌며 가지 않고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다. 수술이 끝난 뒤 사흘이 지나 문병을 갔다. 그런데 또 무엇이 잘못되었나(?) 분위기가 무겁고 밝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되었다.
어쩐지 좋지 않은 말이 나올까 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수술경과만 알아보니, 잘 되었다고 한다. 큰 수술이라 아직 운동(보행)도 할 수 없는데 자꾸 운동을 해보라고 한다며 투덜댔다. 몇 시간을 참다가 궁금해서 왜 그렇게 걱정스런 표정들이냐고 묻자, 수술 후 방귀가 안 나와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방귀가 나오지 않으니 식사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방귀가 시제 땐 망신만 시키더니 이젠 그 방귀가 나오지 않아 여러 사람의 애를 태운다. ‘방귀도 사랑받을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복수술 환자는 장기를 건들기 때문에 소화에 관한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것을 방귀가 나왔느냐로 확인하는 거란다. 방귀(가스)가 나왔다는 건 장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신호요, 음식물을 먹으면 우리 장기들이 음식물을 분해하고 흡수하여 장을 거쳐 변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수술 후, 운동(보행)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반가운 방귀를 마중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한다. 방귀는 하나의 건강신호이며 참을수록 해롭다고 한다. 방귀는 뀌어야 건강하다. 그러나 공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공중도덕에도 저촉되지 않게 뀌는 것은 각자의 현명한 요령이다. 언제인가 방송에서 들으니, 어떤 나라에서는 방귀에 세금(벌금)을 매긴다고 하며, 북유럽 낙농국에서는 제일 큰 공해가 가축(소)의 방귀라고 한다.
몇 시간이 지난 뒤, 끙끙거리던 형님, 소리도 없는 방귀를 뀌고는 “나 방귀 뀌었다!” 자랑스럽게 소리치자,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반가워했다. (2012.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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