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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할아버지들/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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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58회 작성일 12-03-1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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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할아버지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내가 살던 마을은 50여 호의 김씨집성촌이었다. 초 ‧ 중학생이 한때 150여 명에 달해 동네 고샅이 항상 시끌벅적하였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아낙네의 고함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집집마다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도덕성의 기준은 바로 이 할아버지들의 평판이었다. 누구 집 아이는 인사성이 바르고 착하더라. 누구네 아이는 개차반이다. 할아버지들은 당신네 손자와 비교하면서 아이들을 지켜보신 것이다. 영철이 할아버지는 한학에 조예가 깊으셨다. 중학교 1학년짜리 꼬맹이들을 안방에 불러놓고 시험을 치르곤 했다. 당시엔 동네 곳곳에 담화문談話文이라는 것을 모조지 전지 크기로 붙여 놓았다. '범죄예방', '반공방첩 강화', '사회질서 확립' 등등의 제목에 긴 글을 써놓고 맨 아래 부분에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이름을 달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이 담화문 한 장을 가져다 놓고 돌아가면서 읽어보게 하였다. 담화문이라는 것이 절반은 한자로 인쇄되어 있어, 중학 1학년 아이들에겐 읽기 힘든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잘 읽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잘 읽지 못하면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은근히 질책을 하였다. 영철이는 한자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꾸중을 많이 들었다. 우리들은 이에 자극을 받아 담화문을 보면 떠듬떠듬 읽어보고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할아버지들은 당신의 손자에게 제일 관심이 커서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지, 떨어지는지 아시려고 비교하곤 하였다.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무라고, 애 아버지까지 싸잡아 비난하였다. '어떻게 가르쳤기에 그 모양이냐'고 혀를 찼다. 조선 향약에 '과실상규'過失相規라는 덕목이 있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았다. 할아버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아이들이 모여 화투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농한기에는 동네 이곳저곳에서 노름이 성했다. 머슴들까지 한 해 새경을 걸고 겨우내 도박을 하여 날리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유행가를 부르면 할아버지들은 크게 야단을 쳤다. 유행가라면 요즘의 트롯트 가요인데, 어린 아이들이 '사랑'이네, '이별'이네 하고 부르는 것을 보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유행가를 좋아하다 보면 가사 내용처럼 일찍부터 사랑타령을 하게 되고, 공부를 등한시하게 된다는 것이 그분들의 염려였을 것이다. 유행가 대신 동요를 부르라고 하였는데, 동요라고 해보았자 '오빠 생각', '가을바람', '고향의 봄' 정도였다. 그것도 몇 번 부르고 나면 싱거웠다. 방과 후 학교다, 학원공부다 하여 쉴 틈이 없는 요즘 애들보다 그 시절의 어린이들은 퍽 여유로웠다. TV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도 없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질 일도 없었다. 우리 마을 할아버지들은 공부를 잘해야 대처에 나가 상급학교를 다녀, 좋은 직장을 얻거나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누대에 걸쳐 이어온 농사일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사실 공부밖에 없었다. 민철이 할아버지는 유식한 분이셨다. 내가 중학교 세계사 책을 보고 있을 때, 무엇을 배우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책에 있는 중국 황제의 그림을 보면서 중국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셨다. 그렇게 역사를 잘 아시는 분이 왜 시골에서 일을 하고 사는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가끔 냇가에 나가 방울낚시를 하였는데, 집에 가보면 팔뚝만한 메기가 세수 대야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커서 들으니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핵으로 귀농을 하여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종철이 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었다. 오죽하면 꼬맹이들이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불렀을까. 우리 또래들을 만나면 뭐가 못마땅한지 야단을 치거나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집안에 걱정꺼리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설날엔 아이들끼리 동네 할아버지들을 찾아 세배를 드렸는데, 종철이네 집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가 보아도 세뱃돈을 줄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적 일본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영구 귀국을 하였다.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가 큰돈을 벌어 온 것이다.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그 분은 차를 운전하고 다녔는데,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만나면 차에 태워주었다. 아이들에게는 과자나 용돈을 주기도 한다고 널리 소문이 났다.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 할아버지를 좋아하였다. 나는 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 아이들에게 해 줄 일이 없다.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칭찬을 해준 일도 없다. 아이들이 나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고향에 산다면 일본에서 귀국한 고향 어른처럼 또 인철이 할아버지나 민철이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고향 마을엔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2012.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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