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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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여섯 모 꽃잎처럼 나풀나풀 첫눈이 내리던 날, 남편이 통장을 불쑥 내밀며
“당신 비자금이야!”
“비자금?”
“천만 원이니 꼭 필요할 때 써.”
“ ? ”
“어서 받아!”
꿈이 아닌지 사방을 둘러보다 멍한 눈을 껌뻑이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백만 원도 아닌 천만 원씩이나, 그것도 비자금이라는 말에 눈앞의 남편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비자금이란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어쩐 일이냐며 나를 흘깃흘깃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은 여윳돈이든 비상금이든 몽땅 주식에 투자하고 당신 호주머니는 텅텅 비어있다. 한두 해도 아닌 30여년이란 세월을 주식에 쏟은 열정을 어찌 다 말로 할까? 집안경제는 뒷전이고 주식과의 사랑에 빠진 남편은 시시각각 청, 홍색의 표정관리 하기에 바쁘다. 오를 때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내릴 때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던 숱한 세월 속에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며칠 전, 남편이 증권사 카드를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칠팔 개는 됨직스러웠다. 멀건이 바라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미련을 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혼자서 얼마나 이별 연습을 하며 속앓이를 했을까? 짠한 마음에 콧등이 시렸다. 눈가의 주름이 이마에서도 이랑을 만들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이제라도 '내편'이 되어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또 비자금의 출처가 분명해졌으니 받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남편 몰래 몇 백에서 수천만 원의 비자금이 있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남편이 비자금을 주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남편이 손수 챙겨주는 비자금,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생기니 까만 하늘의 별처럼 눈만 깜박이다 고스란히 밤을 새웠다. 어디 나뿐이랴, 책상위의 통장도 꿈쩍 않고 웅크리고 있는 걸 보니 얼떨떨한 모양이다.
옛 속담에 살강 밑에서 숟가락 줍기라지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걸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불안한 미래와 사고에 대비해서 비상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이 돈이 종자돈이 되어 조금씩이라도 모으면 달랑달랑한 주머니 속이 든든해질 것 같다.‘비자금’하면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의 검은돈이 떠오른다. 하지만 주부들의 건전한 비상금은 자신뿐 아니라 집안의 큰일을 해결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가정의 상비약이 아닐까?
(20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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