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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異人 남상우 선생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남상우 선생은 요즘 사람은 아니었다. 6‧25 이후의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당시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찌든 사고방식이 굳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복장으로 볼라치면 항상 우중충한 색깔의 점퍼와 검정바지 차림이며, 넥타이를 맨 것을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넥타이를 매고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지고, 자신도 어색하여 수업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출퇴근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검정 페인트를 몇 번이고 덧칠한 고물로 이십 년은 넘은 듯하였다. 시청 앞 광장에 일주일 동안 팽개쳐놓아도 가져갈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이 선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업 중에 태도가 바르지 못한 학생을 매일 한 명씩 찍어내어 청소시간에 자전거를 닦도록 하였다. 학생들의 불만이 크고 주위 동료들의 빈축도 있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번은 숙직을 할 때, 그 고물 자전거를 숙직실에 들여놓았다가 새벽 순찰에 나선 교장선생에게 들켜 망신을 떨었다. 소문이 퍼져 교무실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터진 적이 있었다.
남 선생은 점심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늘 혼자서 호락질을 하였는데 학생 때부터 써 오던 노란 양은도시락이 별 것이었다. 쇠 젓가락으로 오래 두들겨 바닥이 성한 데가 없었다. 물을 말아 마지막 밥알 하나까지 마셔댈 땐, 물이 새어 나와 책상 위가 흥건하였다. 보리를 7할 가랑 섞은 혼식에 김치 아니면 멸치볶음이 고정 메뉴였다. 그래도 교무실에서 가장 맛있게 입맛을 다시며 점심을 들었다.
남 선생은 남에게 술을 사주는 법이 없고 얻어 마시는 일도 없어 주량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담배는 평생 입에 대어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직원여행 때 정종을 유리잔으로 대여섯 잔을 거듭 들이키는 통에 모두들 놀랐는데, 공짜 술은 그 정도 마셔도 끄떡없다는 이 선생의 이야기였다.
그가 가진 또 하나의 명물은 슬리퍼였다. 교사로 처음 발령 받고 폐타이어 조각으로 만든 것이었다. 교실에서는 매로 대용하기도 하였는데 귀싸대기를 맞은 아이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남 선생은 백묵을 정확하게 던지는 기술이 있었다. 판서를 하다가도 누가 장난을 치면 어김없이 직구를 날렸는데, 어이쿠 소리가 영락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교실에서는 눈감아 주는 법이 없지만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 탓하는 일이 없어, 뒤끝이 없다고 좋아하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남 선생을 좀 덜 떨어지고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학년 초 연구수업을 한 번 해보라는 지시가 내게 떨어졌다. 교감선생이 나의 수업을 잠깐 돌아보고 간 뒤 쓰다 달다 한마디 없이, 남상우 선생 수업을 보라는 권유만 하였다. 마지못해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동안 참관하게 되었다.
처음엔 몇 분만 보고 나오려는 생각이었으나 그만 얼이 빠져 꼼짝을 못하였다. 50분간 내내 충격과 감탄 속에서 보냈다. 세상을 다시 보는 개안의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출석부와 백묵 두어 개만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가는 꼴은 가관이었는데, 수업내용은 청산유수였다. 판서는 어찌 그리 예쁘고 짜임새가 있는지, 음정의 고저, 수업 전개과정, 학생 반응이 모두 일품이었다. 교직과목 교재 속에 너절하게 쓰인 '효과적인 학습지도'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칠 지경이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뒤 남 선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한 수 배우고 싶은 생각으로 남 선생에게 술을 대접하였다. 따지다 보니 학교 선배가 되어 더욱 가까워진 터에 이 선생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방안이 흐릿하여 천정을 올려다보니 15촉짜리 백열구에 파리똥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가구들도 모두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한 퇴물들이며, 모든 것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 번 놀란 것은 남 선생의 독특한 이재비결이었다. 20여 년 전부터 사 모은 주식을 마냥 쳐 박아 놓았다가 얼마 전에 몽땅 처분했다고 하였다. 수억 원이 족히 되었는데 골치가 아파서 은행에다 예치해 놓았다고 하였다. 월급은 매달 절반을 떼어 처가에 보내는데 지금은 그게 논밭으로 변하여 어느 정도인지 자신도 모르다고 하였다. 아내도 맞벌이로 자기 생각과 같아 불평이 없다고 하였다.
“아마 자식들 대에는 나처럼 고생하지는 않을 거야, 허허허!”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서 밤새도록 몸을 뒤척였다.
(201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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