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훈단 교관/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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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훈단 교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낭만이 넘치는 대학 캠퍼스에서 군사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일반 학생들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고 호기심 많은 여학생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쉬웠다. 요즘같이 군 복무기간이 2년 내외로 단축되고 병영 환경이 나아졌다면 나는 학훈단(ROTC)에 입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8년, 3년간의 군 생활은 꽤 길었으며, 사병으로서의 복무 여건은 열악하였다.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은 4년간의 수학기간을 계속하기 힘들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가정교사 자리뿐이었는데, 학생 집에 입주하여 숙식만 해결하여도 감지덕지 하는 처지였다. 대부분 버티지 못하여 중도에 휴학하고 입대를 하였다.
나는 몇 가지 점을 고려하여 학훈단-당시는 학도군사훈련단이라고 했다-바로 ROTC를 지원하였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단에 나갈 때를 대비하여 지휘 경험을 쌓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매력이 있고, 졸병보다 장교생활이 낫겠다 싶었다.
학훈단 교관은 생각보다 엄하였다. 특히 1년차 후보생 훈육을 맡은 이 중위는 더했다. 서울 토박이로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월남전 참전 경력을 가진 장교였다. 교육시간에 월남전 이야기를 듣는 것이 흥미로웠으나, 빳빳한 군인의 전형으로서 캠퍼스의 이방인이었다. 화기학 시간에 대공화기인 캘리버 50을 순식간에 분해 결합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는 미제 정글화를 잘 닦아 신고 군모에는 공수마크를 붙여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조금이라도 사정을 봐주는 일은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동계방학 중 불시에 후보생들을 비상소집한 것이다. 전라도 산골에 있었던 나는 폭설이 내렸다는 이유를 들어 불참사유서를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개학 후 일이 터졌다. 비상소집에 참가한 후보생들은 열외가 되었고 연락 없이 불참한 사람은 참나무 몽둥이로 50대씩 맞고 고꾸라졌다. 나와 같이 연락을 한 후보생들은 30대씩 맞았다.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참담한 체험을 하였다. 캠퍼스 새내기들이 오가는 교정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자존심도 상했다. 그 뒤 이를 물고 훈련을 마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 교관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배운 것들이 실제 군 생활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동기생들로부터 이 교관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중위는 생도 시절 뛰어난 성적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배들의 눈에 들어 하나회에 뽑혔다고 한다. 10.26 사태 후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군 출신의 대통령이 군에서 근무했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육군 수뇌부 참모로 이성 장군까지 올랐다. 그 때만 해도 참모총장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하나회가 서리를 맞으면서 이 장군은 코너에 몰렸다. 결국 국방위 회식사건에 연루되어 옷을 벗었다고 들었다.
무상한 게 세월이다. 권력을 배경으로 출세하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추락한다는 엄연한 교훈을 깨달았다.
(201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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