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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 아저씨/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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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11-09-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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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 아저씨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고향에 말 없이 웃음으로 반겨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대길이 아저씨다. 1년 내내 손에서 일을 놓지 않지만 딱 하루만은 예외였다. 그날이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이었다. 백중날은 추석을 한 달 앞두고 논농사도 웬만큼 짓고 무더위도 한 풀 꺾이는 때다. 농사꾼들이 하루 맘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날이다.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되는대로 쌀과 돈을 추렴하여 마을잔치를 푸짐하게 벌이곤 했었다. 대길이 아저씨는 소년시절부터 친척집에 꼴머슴으로 들어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머슴살이로 보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남들이 몰라보는 먼 동네에 가서 머슴살이를 하겠지만 대길이 아저씨는 자신의 오두막집에서 가까운 친척집을 선택하였다. 자신이 이것저것 살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자기 집에 오가기 편해서 그랬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거나 궁리하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학교는 가본 적이 없고 글을 깨쳐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지 않아 겨우 이름자 정도 분간할 뿐이었다. 썩 부지런하거나 영리하게 요령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일을 위해 태어나, 일을 하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 일꾼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투전판을 굽어다 보거나 바둑, 장기 등에 빠져 들지도 않았다. 여색에도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의 꿈은 머슴살이를 하는 주인집의 논밭을 사는 것이었다. 한 푼의 낭비가 없었다. 오로지 먹고 일하고 자는 원시적인 생활을 계속하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무엇을 하던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길이 아저씨의 아버지는 꽤 유식한 분이었다. 한학을 오랫동안 공부하였다. 그러나 생활은 하루 삼식三食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마을에 사는 처남이 수력발전소에 다니고 전답이 중농쯤 되었는데, 6.25전쟁으로 인민군 치하가 되면서 대길이 아버지는 변했다. 처남을 찾아가 직장을 내놓거나 전답을 내놓으라고 위협을 했다. 정말 그랬을까 의아스럽기도 하다. 대길의 외삼촌은 직장을 그만두었으면 두었지, 땅은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니까 대길이 아버지는 좌익활동을 하면서 인척들에게까지 피해를 준 것이다. 적 치하의 세월이 수 개 월로 끝나고 그 후유증은 오래 갔다. 두 집안의 남정네들은 서로 상종을 하지 않았고, 겨우 대길이 어머니가 마지못해 친정을 드나들 뿐이었다. 대길이 아저씨는 말이 없는 편이었고, 외가에는 가지 않았다. 남이나 다름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머슴살이 새경을 착실히 모아 장리변으로 쌀을 늘리고 한두 마지기씩 논을 사 모았다. 악착같은 절약으로 살림이 늘기 시작하였다. 가능하면 머슴살이를 한 집에서 나오는 논밭을 샀다. 어떤 보상심리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대길 아저씨에게 시집 온 아주머니는 남편과 천생연분으로 코드가 잘 맞았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면서 동네에서 소문난 알부자가 되었다. 살림은 당대에 일굴 수 있었다. 백중날 대길이 아저씨는 아침부터 신이 났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막걸리를 한 동이쯤 마시는 것 같았다. 아니 더 마시면 마셨지 그보다 적게 마시지는 않았다. 온갖 산해진미가 안주로 나왔다. 체면을 차리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공짜인 것이 좋았다. 자그마치 1년을 기다린 날이 아니던가. 실컷 마시고 취했다. 그동안 참았던 말을 아무에게나 맘껏 해댔다. 하늘을 보고 껄껄대기도 했다. 사람이 180도 변한 것이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말릴 사람이 없었고 말릴 필요도 없었다. 헐크의 변신 같았다. 동네를 휩쓸고 다니며 누구에게나 시비를 걸고 고성방가를 했다. 대길이 아저씨에게는 그날이 해방의 날이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는 날이었다. 힘은 장사인데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열차와 같았다. 이제 대길이 아저씨는 칠순의 중반이 넘은 고령이 되었고 고향도 많이 변했다. 백중날 동네잔치도 사라진지 오래다. 대길이 아저씨의 백중날 활약은 그리운 옛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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