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꿈/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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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꿈
전주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3층 건물인 우리 집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1층이 상가였다. 살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상가보다는 주택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1층 40평을 절반씩 나누어 2주택으로 개축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은 한 지붕 아래 5가구가 살 수 있는 다세대 단독주택이 되었다.
1층에 101호, 102호와 2층에 201호, 202호 그리고 3층에 우리 집인 301호 이렇게 5가구가 산다.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사는 이 분들은, 매일 한 대문을 출입하면서도 서로 얼굴보기가 힘들다.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살면서 혹시나‘따르릉’일반유선 전화벨이 울리면, 외부전화보다는 대부분 이들 가구 중 누군가가 전화를 하는 경우다.
가장 흔한 게 아내와 동갑내기인 101호 독신 할머니다. 처음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는 꽤나 까탈을 부렸다. 하지만 101호는 주택으로 개축할 당시 아내 꿈에 호랑이가 들어갔다고 하여 집터가 유난히 좋은 집이다. 이사 올 때 많이 아팠던 할머니는 이 집에 살면서부터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전에는 어려웠던 자녀들도 지금은 하는 일마다 다 잘 된다고 자랑하며 요즘에는 만날 때마다 웃고 좋아한다.
그런가하면 건평이 101호보다 큰 102호는, 본 건물과 담사이의 공간을 활용하여 개조했기 때문에 5평이나 더 넓다. 여기에 노총각 아들과 함께 사는 이 장년부부는 천성이 착하고 좋은 분들이다. 부인은 낮에 일을 다니고, 바깥주인은 야근하는 관계로 낮에는 집에서 잠을 잔다. 내가 전에 S방송국에서 주야간으로 교대근무를 했던 옛날 일을 회상케 한다.
또 201호에 사는 격 월말 중년부부는, 10여 년 전 우리 집 건축 당시부터 세 들어 살던 분이니 우리 집 5가구 중 가장 먼저 입주한 고참이다. 바깥주인이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몇 달 만에 한 번씩 집에 온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며 전교에서 항상 1등을 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이 부인은 생활력이 강하고 심성도 좋으며 부지런하다.
이에 비해 202호 과수댁은 직장에 다니는 미혼 딸과 함께 산다.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집이 밝고 환경이 좋다고 하여 한 울안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들은 매일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딸과 어머니가 교대로 집에 머물며 산다. 낮에 일을 다니는 이 과수댁은 경우가 바르고 깔끔한 편이어서 털털한 우리 집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때는 너무 꼼꼼하여 오히려 내가 부담을 느낄 때도 왕왕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위, 아래, 옆에 붙어살면서도 한꺼번에 모두 대면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어림잡아 지내니 좀 어색하여 가급적 서로 친하게 지내려고 신경을 쓴다. 언제 날을 잡아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파트처럼 저마다 세상살이에 바쁘다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한 지붕 아래에서 5색 무지개처럼 저마다 색깔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어울려 산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웃집 사람들은 우리에게 주인이 좋으니 사람들을 잘 만났다고 하지만‘글쎄올시다'이다. 전에 내가 어렵게 살았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이야 경제력이 향상되어 별다른 걱정 없이 먹고 살지만, 1950 ~ 60년대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 4·19와 5·16군사혁명을 겪어본 나와 동년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말일 게다. 과거의 나는 지금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이 분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험난한 고행 길을 걸었다.
S방송 재직시절 남의 집 문간방에서 솥 하나 숟가락 하나로 신혼의 단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천벽력이라더니, 척추디스크로 주저앉아 10여년의 정든 직장을 눈물로 하직해야 했다. 여기에 아내마저 맞벌이하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날 뒷바라지하며 힘든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1년여 만에 완치가 되어 교직에 종사하면서 차차 가세가 회복되었다.
그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삿짐을 꾸린 횟수가 주민등록표 2장이나 되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장 힘든 것은 철없는 어린애들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아이들 없는 가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셋방살이를 옮길 때마다 이런 서러움을 숱하게 당하며 브레이크가 걸려서 한이 맺혔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기에, 우리 한 지붕 무지개가족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집주인으로 만들어 준 계기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 집에 사는 분들은 나에 비해 행운아인 셈이지만, 그래도 사소한 불편꺼리가 생기면 못마땅해 한다. 세상이 달라져서 그런가보다. 어려움의 저편에서 편하게만 살려는 신세대들을 보면 나로서는 참 허허로울 뿐……. ‘손님은 왕이지’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다. 비록 나야 때를 잘못 만나 고생했을망정, 후손들에게 절대로 대물림할 수 없는 이 역경만큼은 그들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는 신념은 자녀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다.
공직생활을 하던 중 50대가 되면서 노후대책을 염두에 둔 일이 있었다. 연금이 나오니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 앞길이 창창한 나이에 퇴직을 하면 어떻게 할까? 연금에만 의지한다는 것도 좀 그렇고 뭔가 생산성 있는 생활을 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매달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묘책으로 떠오른 것이,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형편상으로는 가당치도 않았던 허황된 장밋빛 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퇴직한 지금 나는 그 장밋빛 징검다리를 건너, 전주 서신동 길목에 둥지를 틀고 예리한 촉수로 생生을 더듬고 있다. 한 지붕 5가구 다세대 주택, 내‘무지개 꿈’이 서려있는 이곳에서 삶의 차안此岸길을 걷는다. 문필文筆의 조리개를 활짝 열어 노을에 초점을 맞추고 멋진 황혼의 세상을 찍으면서…….
(2011.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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