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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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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79회 작성일 11-09-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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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사실 내가 촌놈이라는데 이의를 달고 싶지 않다. 전라도 산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으니 보고 들은 것이 시골 이야기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우리들은 길을 잃을까 걱정되어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모양이 촌스러워서 그랬는지 서울 아이 몇 명이 우리 뒤를 따르면서 "시골띠기! 촌띠기!"라고 외치며 놀렸다. 할 일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신경이 쓰였다. 시골에서 왔으니까 어쩌란 말이냐고 키 큰 아이들이 그 애들과 싸울까보아 선생님은 우리를 달랬다. 중학교 때 산업박람회가 열려 또 서울에 갔다. 이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내가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어떤 아이가 배탈이 났다. 선생님께서 약국에 가서 소화제를 사오라면서 '카스테라'도 사라고 돈을 주셨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약국을 찾았다. 소화제를 사고 '카스테라'를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약사는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미소를 짓고 "저기 빵집에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약국에는 없고 빵집에 있는 약이 대체 무엇일까? 알고 보니 그것은 약이 아니라 카스테라 바로 그 빵이었다. 선생님이 소화제와 함께 사오라 하니까 나는 약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약사는 나를 얼마나 무지한 촌놈으로 알았을까. 대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일단 교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숙부님이 운영하시는 조그만 가게에 나가 잡일을 하고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숙부님과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한 분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한 번은 자네 조카가 참한데 어디 취직자리 하나 소개해 줄까 하며 숙부께 제안을 하더란다. 숙부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고 하셨다. 농사일을 싫어하는 농촌의 젊은이가 무작정 상경하여 친척집에 붙어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까닭이라고 보았다. 훗날 그 분은 내가 대학생이란 것을 알고 소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와 사과를 하고 한바탕 웃었다. 이것은 나의 촌놈 스타일과 근성이 빚은 촌극이었다. 지난여름 나는 태국에 다녀왔다. 현지인들과 접촉을 많이 했는데, 태국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었다. 내 얼굴이 조금 검어 보여 촌티가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조상이 태국인이었는데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갔다고 능청을 떨어 그들을 웃겼다. 나는 양복을 잘 입어도 폼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정장 입기를 싫어한다. 수수한대로 평상복을 즐긴다. 백수가 되어서는 더욱 촌스러움이 빛을 발한다. 나는 영원한 촌놈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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