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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5회 작성일 11-09-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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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필 강의를 듣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 한 교 중학시절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란 수필을 공부하며 그 글이 좋아 달달 외우다시피 했었다. 아직도 그 절절했던 느낌이 아련히 남아 있다. 기분 좋은 기억이지만, 잊고 살았다.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오늘 기억의 더듬이가 꿈틀거리고 있다. 44년 동안 잠자고 있었던 미라가 서서히 부활하는 느낌으로 가을이 다가온다. 궂게 닫혀 있던 철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갈 햇살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어둠 속에 멈춰 있던 괘종시계가 종을 치며 살아난다. 잠자던 참새가 파란 하늘로 날아간다. 그리고 멈춰 있던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그동안 게으름이 버릇이 되어 멍하니 눈만 뜨고 산 세월이 아깝다. 책상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갈망, 언제든 원하면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교만 뒤에서 뱃살이 토성처럼 띠를 두르고, 무서리처럼 내린 흰 머리칼이 서럽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경쟁의 틀에 갇혀 시간을 죽이며 산 후회의 세월이 계산조차 안 된다. 거울을 볼 겨를도 없이 전투처럼 살아온 지난날이 흘러간 구름처럼 흔적이 없다. 늘 마음으로만 수필 속에서 살았다. 가을이 되면 문턱에 서서 높은 하늘과 들판을 보며 오감(五感)의 촉을 세우고, 눈 내리는 겨울이면 솜이불 속에서 군고구마 향기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연초록 잎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부드러운 바람결에 흐느적거리면 벌떡 일어났고, 짜증나는 여름엔 자연을 탓하며 게으름으로 시간을 먹고 살아온 나다. 왜 그랬을까? 맹하고, 끈기가 없는 풀떼죽처럼, 시작은 있었지만 끝이 없는 포기의 시작은 어디인가. 왜 변화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희미한 문신처럼 되살아나 아프게 하는가. 유복자로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조차 지우며 살고 있는데, 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그 기억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음을 흔들어 놓고 바라만 보는 그는 누구인가. 왜 진득이처럼 달라붙어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혹, 몹쓸 병은 아닌가. 소중한 기억조차도 모닥불처럼 사위어가는 데, 왜 자꾸 손짓하는가. 오늘도 퀴퀴한 곰팡냄새를 싣고 겨드랑이 사이로 한 줄기 갈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또 진통이 시작된다. 커피 향 같은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니 아프다. 내 맘과 상관없는 갈 햇살이 바람을 타고 여인의 긴 머리칼을 가른다. 성급한 나뭇잎이 얼굴을 붉히며 떨어진다. 그 낙엽들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길 위에서 또르르 굴러간다. 누군가 구겨버린 전단(수강생 모집광고지) 한 장이 그 뒤를 따른다. 난 또 할 일 없이 무심코 그 전단을 집어 들었다. 평생교육원 수강생 모집 광고지였다. 버렸다 다시 집어 들었다. 갑자기 이 종이가 가을 하늘을 나는 요술양탄자가 되었다. 올라탔더니 날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다른 일들이 날 불러 세우려 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이곳에 왔더니, 고집을 피울 겨를도 없이 책상에 꿇어 앉혔다. 그리고 내 앞에서 아무렇게나 흩어져 버린 퍼즐 같은 생각을 신비롭게 맞춰나가기 시작한 바로 그날이 2011년 9월 1일 저녁 7시 30분 전이다. 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이다. 왜 수필증후군에 걸려 있는지, 왜 44년 전의 느낌이 내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렇다면 수필은 나에게 무엇인지,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찾아왔다는 얘기다. 막상 답을 들으려 하니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레고 두근거리지만, 강의실이 안방처럼 포근했다. 아늑했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것 같이 편안했다. 밤인데도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팔순 어르신, 옆자리 아주머니, 친구 같은 벗들이 모두 샛노란 병아리 같았다. 꿈 많은 중학생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행복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지 풍금소리가 들렸다. 코끝이 찡했다. 갈 햇살에 붉은 고추를 마당 가득 널어놓은 것 같은 부자 같은 마음이다. 막혔던 혈관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세상에서 나비가 손끝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처럼 신비로웠다. 술도 있고, 담배도 있으며, 미움과 사랑, 저주의 언어도 있었다. 찌그러진 빈 깡통과 그 밑을 꿈틀꿈틀 기어가는 지렁이가 공존하는 세상도 보였다. 이웃의 삶이 내 삶이 되고, 악을 쓰며 거짓을 말하는 어느 할머니가 왜 갑자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아들 자랑에 거품을 물었는지 알 것 같다. 왜 첫사랑이 소중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순간 종이 같은 벽에 의지하며 산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눈질 하지 않는 것이 순수요 자랑이라 여겼던 잘못된 생각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두리번거려 볼 것을, 만져보고 주물러보고 바닥에 내던져 박살도 내보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헤아려볼 것을, 그리고 참고 견뎌볼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의 이 시간은 후회가 만들어 준 우연이다. 그래서 309강의실에서 듣는 교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법이요, 꿈과 연결되는 가교(架橋)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더 두고 봐야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 상자 앞에 선 기분이다. 소년의 마음으로 소녀를 보듯 두근거린다. 얼굴이 붉어지며 촉촉한 입술이 파르르 떠는 소녀를 넋 놓고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제 이 끈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지금부터 인생의 의미를 가슴으로 새기며,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노래할 것이다. 새와 더불어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교수님의 말씀처럼 진솔하게 알리고 고백할 것이다. 단아한 언어로 품위와 위트가 담긴 말로 또렷하게 얘기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절제하며 천박하지 않고 기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발을 내디딜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표정과 얘기를 귀담아듣고, 수필을 생활의 일부처럼 여기며, 늘 새로운 마음으로 강의를 들으려 한다. 교수님의 기법을 터득하기보다는 그 마음을 닮아보려 노력할 것이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느낌을 닮도록 하며, 아픔을 기쁨으로 알며 열심히 배워보려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수필이요, 다시 회복할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201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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