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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넘겨/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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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61회 작성일 11-09-0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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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넘겨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내 운전면허증은 1980년도 후반에 취득하여 근 15~6년 동안이나 서랍에 보관 해두었던 장롱면허증이었다. 그러다 2004년 봄, 큰사위가 퇴직하면 여행이나 다니면서 소일하라고 승용차를 구입해주는 바람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운전교습 하루 만에 곧바로 시내를 주행하면서 여행 갈 꿈부터 꾸었다. 두어 달간 운전솜씨를 익히고 방학을 기다리면서, 틈틈이 지도를 보고 행선지와 도로번호 등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일정표를 짰다. 여장旅裝을 꾸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동해안을 경유하여 설악산을 가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어릴 때 부산에서 살던 초등학교시절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경주가, 오늘날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기에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먼저 들렀다.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신라의 고도 관광을 즐겁게 마치고, 토함산 중턱에 있는 휴양림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운전대 앞에 세워놓은 계획표를 일일이 확인해가면서, 지방도와 국도의 도로 번호를 체크하고 이정표를 따라 포항으로 달렸다. 동해안관광은 뭐니 뭐니 해도 7번 국도부터가 시작이다. 확 트인 해변을 달리는 가족들이야 신바람이 났지만, 초보 운전인 나는 처음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빨리 피곤해지고 방향 감각마저 어둔해졌다. 그러다보니 시야가 좁아져 구경보다는 운전하기에 바빴다. 휴게소에 들러 쉬는 때나 잠시 주위를 구경할 뿐, 운전할 때는 앞만 보고 행선지를 찾느라 관광이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직장동료가 귀띔해 준 ‘장거리 여행은 반드시 교대운전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여행 코스가 단순했으면 별 무리가 없겠지만, 뭣도 모르고 기분에 들떠 나온 여행길이라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일주일 이상의 여행길인데 오직 나 혼자서 운전해야 하는 관광길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피로가 쌓였으나 그대로 강행군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다니다보니 장거리운전에 대한 요령이 생겼다. 운전시간을 줄이면서, 볼 만한 관광지에서만 숙식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초저녁부터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운전도 할만 했다. 오색단풍이 아름다운 설악산에서 1박을 한 뒤 통일전망대를 거쳐 진부령을 넘어, 관광지로 이름깨나 난 곳들을 들르며 춘천 소양강댐 밑에서 닭갈비로 저녁식사를 했다. 그건 춘천의 별미였다. 다음 날은 산정호수에 들러 나도 언젠가는 신세를 져야 할,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는 거미발 명당을 먼발치에서 훑어보면서 호수 둘레 길도 걸었다. 또 한류열풍을 몰고 왔던 드라마 '겨울연가'를 촬영한 남이섬에서는, 오밤중에 쏟아지는 비를 맞기도 했지만 10여 일간 사위덕분에 구경 한 번 잘했었다. 강원도 여행의 안내자인 지방도로와 국도, 고속도로는 바쁜 사람들이 스쳐가는 길일 뿐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길이었다. 멋과 맛이 어우러진 지방도는 곳곳에 비경을 숨기고 있어서, 무엇보다도 이 도로를 타야 관광과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천천히 쉬엄쉬엄 눈요기도 하면서 그 지역의 특산물도 맛보고, 산 좋고 물 좋은 이 도로에서 한 폭의 산수화도 그리고 겸해서 쏠쏠한 재미와 함께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귀갓길에서 고마운 사위를 만날 요량으로 선물꾸러미를 들고,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나는 경기도 구리에서 고속차량에 휩쓸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울 시내로 접어들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관광도로를 벗어나 도심지에 오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차량들의 홍수에 휘둥그레진 내 눈길은 방향감각이 마비되어 여기가 어디인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다. 평소 고속버스로 다닌 길이니 아무래도 좀 나을까싶어 들어섰지만, 손수 운전하는 서울 길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때부터 나의 쥐잡기 운전은 시작되었다. 미리 적어가지고 간 서울도로 수첩을 꺼내 운전대 앞에 붙여놓고 이정표를 보면서 완전 서행운전을 했다. 길을 찾아 헤매는 내 차량 뒤에는 길게 늘어선 다른 차량들의 꽁무니가 줄을 이었다. 경적들의 혼란에 빠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빨강 신호등만 보일 뿐 단속카메라나 다른 신호등은 물론 교통 표지판도 아예 보이지 않았다. 교통질서가 무색했다. 한 구간을 지나칠 때마다 수첩 쪽지를 넘기며 한참을 가다보면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넘겨, 넘겨!” 계속 목소리를 터트렸다. 다급한 내 목소리에 따라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정신없이 수첩의 페이지를 넘기느라 좌불안석이었다. 뒷좌석의 딸들도 혼비백산하여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서울 영등포 대방역을 찾았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정표만 잘 보면 대충 찾아 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헤맸는지 온 몸이 땀투성이고 긴장한 내 몰골은 꼴불견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신풍역 사거리에 오니 대형건물인 사위의 동물병원이 눈에 번쩍 띄었다. 얼마나 고생해서 찾아온 사위집인가. 하루 밤을 새며 여행담으로 회포를 풀었다. 서울 길을 헤맨 상황을 설명하는 가족들이 내 흉내를 내는 걸 보니 요절복통에 가관이었다. 배꼽을 쥐고 얼마나 웃었던지 옆집에서 무슨 일이냐고 전화가 올 정도였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난 무렵 서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운전을 어떻게 했기에 매일 배달되는 딱지 때문에 기가 막힌단다. 과속과 주차위반 그리고 신호위반 딱지가 떼거리로 몰려오면서 범칙금이 60만원 가까이 된다며 울먹였다. 차라리 부모가 아파서 나온 병원비라면 몰라도, 소매치기 당한 것도 아닌 돈을 물어야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 당시는 차가 사위 이름으로 되어 있었던 터라 면목이 없었다. 즉시 전주자동차등록사무소로 가서 명의변경신청을 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딸이 물어준 범칙금 외에도 또 20여만 원 가량의 벌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변제한 뒤 이름을 바꾸었다. 그 얼마 뒤 사위가 대학교 강의 때문에 전주에 내려온 김에 우리 집에 들렀다. 그때 승용차에 카메라 단속경보기를 부착해주었다. 운전대를 잡은 지 불과 몇 달 새에 낸 80여만 원의 범칙금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부끄럽다. 무모한 초보운전자의 신고식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뒤로는 행여나 카메라에 찍힐까 두려워 조심운전을 한다. 이제 운전경력 8년이다. 어지간히 숙달되어서 시야가 넓어지니 카메라도 교통표지판도 잘 보여 딱지 뗄 일은 별로 없지만 가끔은 주차문제로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함께 가끔 그 ‘넘겨, 넘겨’ 때문에 웃음꽃을 피운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거리려니 싶다. (2011.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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