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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김길남 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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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34회 작성일 11-08-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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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빈 틈바구니를 찾아 차 엉덩이를 디밀고 내리니 한 달 만에 만난 얼굴들이 반갑다. 8월 중순의 햇볕은 커다란 구름모자가 가리지만 사이사이로 내민 열기가 숨을 막히게 한다. 며칠 전 내린 무더기비가 시냇물을 불려 쏴쏴 흐르는 소리가 시원스러워 그나마 다행이다. 모악산 도계마을 주차장에서 연분암을 가는 길이 멀기도 하다. 길가의 과수원에서는 잘 익은 복숭아가 낯을 붉히고, 올 추석 제사상에 올리라고 배가 무르익고 있다. 수북이 자란 들깻잎이 어서 따다 장에 담그라고 손짓을 한다. 쉬엄쉬엄 그늘을 찾아 걸어도 숲길이 아직도 멀었다. 앞가슴으로 땀 한줄기가 쪼르르 흐른다.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편백나무 숲에 이르렀다. 피톤치드가 나와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치유한다고 소문이 났다. 암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찾는단다. 쉴 수 있는 의자가 여기저기 놓였고 강의와 토론, 모임을 가질만한 마루도 있어 쉬기 좋았다. 같이 간 친구들과 자리를 잡았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깊은 숨을 쉬었다. 한참 마시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내 몸속에 있는 나쁜 세포들도 모두 없어지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어서 와 발이라도 담그라고 했다. 올여름 물속에 들어가 본 일이 없어 발이나 씻자고 판판한 자리를 찾아 갔다. 발을 담그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이렇게 좋은 걸 한 번도 못했다. 조금 있으니 발이 약간 시렸다. 무더운 여름인데 나무그늘이라 하여 이렇게 시원할 수 있을까 싶다. 늙은이 주책이라고 흉 볼 것 같아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런 맛으로 피서를 가는가 보다. 옛날 선비들은 아름다운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산들바람을 벗 삼아 시를 짓고 음률을 즐겼다. 친한 벗들을 불러 술잔을 기우리며 시회를 열고 감상하면서 더위를 피했다. 한낮에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시냇가로 내려가 탁족을 했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서 찬물에 담그면 금방 온몸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반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옆에서 하인이 부채질이라도 한다면 금상첨화겠지. 동국세시기에 서울 남산과 북한산 계곡의 탁족놀이를 여름철 피서 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탁족은 양반들의 풍속이었다. 어디 그거뿐이랴. 전국 곳곳에 정자가 많고, 좋은 곳이다 싶으면 누각이 있는 것을 보면 선인들은 여름을 나는데 물질적 정신적 공력을 많이 들인 것 같다. 내가 8살 되던 해 서당에 다닐 때다. 선생님은 한 여름에도 탕건을 쓰고 긴 한복을 입으셨다. 양팔에는 등(藤)토시를 끼고 땀받이 등 조끼를 걸친 위에 옷을 입었다. 방구석에는 죽부인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는데 잠잘 때 시원하게 안고 자는 것이라고 접장이 알려주었다. 여름에는 세모시 적삼에 바지를 입고 선생님은 이렇게 더위를 삭였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옛날에도 여름을 슬기롭게 보냈다. 문은 걷어 올려 바람을 통하게 하고 대발을 쳤다. 널따란 대청에 누워 부채질을 하면 한 여름도 지낼 만했다.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차디찬 샘물로 등목을 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우물 속에 넣어 둔 수박을 꺼내 잘라 먹는 맛은 말해 무엇 하랴. 책 한 권 골라들고 편백나무 숲을 찾아 하루를 보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아닐까 한다. 더위도 잊고 건강에도 좋으니 누가 마다하랴. 책 읽다 눈이 침침하면 낮잠도 즐기고, 지나는 친구가 있거든 세상사는 이야기라도 나눈다면 태평세월 누구를 부러워할까. ( 2011. 8.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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