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 'ㄱ'자할머니/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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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ㄱ'자 할머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은 종 삼
“야~! 아니, 할머니 이렇게 뜨거운데…….”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한낮의 삼복 찜통더위다. 안골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출입구 옆 화단에서 홀로 잡초를 뽑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이글이글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8월의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참으로 한가롭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에어컨이 시원한 공기를 뿜어내는 실내에서 신문을 보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기도 하고 TV를 시청하기도 한다. 단잠을 즐기는 어르신들도 있다. 나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유독 92세 ‘ㄱ’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만이 점심시간에도 일손을 놓지 않고 있다. 아마도 할머니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벗 삼아 놀고 있는 것일까. ‘찰칵’ 스마트폰이 내 마음을 담아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으며 “덥지 않으세요?” 인사를 했다. 알아듣는 둥 마는 둥 앙상한 갈퀴손이 풀만 잡아당긴다. 꽃들이 좋아서 웃는다. 할머니의 손은 자신의 일터인 복지관 옆 폐지수집장으로 가는 길 주변 잡초까지도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ㄱ' 자 할머니가 지나는 길은 말끔해진다.
복지관에서 점심을 먹는 식구는 ‘ㄱ’자 할머니를 비롯하여 하루 평균 200여명이 웃돈다. 그러나 애기손바닥만한 화단의 잡초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잡초가 코앞에서 꽃을 가리고 있지만 눈에 띠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 ‘ㄱ' 자 할머니 눈에만 꽃과 잡초가 보일 뿐이다. 할머니는 안경도 Tm지 않았지만 참으로 밝기도 하다. 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노니는 저 어르신들 가운데는 한때 사회 각계각층에서 내로라하던 지도적 인사도 많다. 그러나 복지관화단에서 무성한 잡초를 뽑는 어르신은 없다. 그러고도 입으로는 여생을 봉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ㄱ’자 할머니는 ‘봉사’라는 말을 알지 못한다. 길가의 풀을 뽑고 폐지를 주우면서도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밥 먹듯이 일상적인 일로 여긴다.
올여름 문학강연회에서 수필가 김학 교수는 문인으로서 대성하기 위한 문학적 ‘멘토’를 두라고 강조했다. 요즈음 멘토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많이 쓰인다. 선생님 멘토, 대학생 멘토, 정치적 멘토 등 무슨무슨 멘토 라는 신문 기사 제목이 종종 눈에 띤다. 멘토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아직 일반화 되지 않은 말인지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았고, 영어사전에는 ‘mentor;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스승 은사 좋은 지도자’라고 풀이되어 있다. 어원은 그리스신화에서 오디세이가 그의 아들을 맡긴 훌륭한 스승 ‘멘토르’란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굳이 멘토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사사(師事)라고 하여 예로부터 흠모하는 분을 스승으로 섬기고 따르며 본받는 것은 선비뿐만 아니라 예능인과 기술자, 의술인 등 각 분야의 유명인들에게는 다 있어왔다. 누구나 멘토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참으로 필수적 조건이라 할 것이다.
나의 멘토는 누구인가.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때그때마다 나의 처지에 따라 멘토는 있었다. 학창시절의 선생님, 친구, 군복무시절의 부대원, 더 나아가서 역사적 인물, 언론에 소개된 감동적인 삶을 보여준 인물들, 성인군자와 책속의 주인공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멘토들의 가르침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그러나 특정인을 정해서 마치 무당이 신(神)을 섬기는 것 같은 멘토는 아직 없다.
그런데 최근 나는 멘토를 찾았다. 내가 평소 흠모(欽慕)하는 인간상(人間像)이다. ‘맞아, 저렇게 살아야 돼.’ 어떻게?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산 자의 것이다. 죽은 자는 소용이 없다. 아니다. 살아 있어도 병원에서 침대생활을 하는 것은 옥살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삶이라면 무슨 소용인가? 세상은 마땅히 일하는 자의 것이어야 한다. 아니 일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뇌물, 횡령, 투기, 도둑, 깡패, 스폰서, 상납, 날치기, 모함, 노숙자 등등 세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멘토의 기준을 정했다. 첫째는 내가 3년 이상 늘 곁에서 지켜보아 온 사람 중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는 사람, 둘째로는 꾸준히 일을 하는 사람, 셋째로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사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다. 이 조건에 딱 맞는 분이 바로 92세 ‘ㄱ’자 할머니다.
할머니는 2남 1녀의 자녀에 손자 6명, 증손자 8명을 둔 어엿한 가정의 할머니다.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휴지를 모아 용돈을 벌고, 텃밭을 가꾸어 이웃과 나누며 산다. 비록 허리가 굽었지만 장애로 생각지도 않는다. 나는 ‘ㄱ’자 할머니를 보면 힘이 솟는다. 아~ 나도 92세까지 아니, 할머니가 사는 만큼 저렇게 일하면서 살 수 있겠다. 어쩌면 할머니는 살아있는 부처인지도 모른다.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할머니의 웃음 띤 얼굴이 꼭 부처님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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