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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마당에서 꽃피운 아름다운 꿈/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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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6회 작성일 11-07-25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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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마당에서 꽃피운 아름다운 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주간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어젯저녁 아중저수지 아래 ‘로뎀’이라는 카페에서 「예원 섹소폰학원 가족초청 음악연주회」가 있었다. 섹소폰에 입문한지 8개월 만인 나는 두려움은 있었으나 도전하는 각오로 동참했다. 15명의 회원들과 가족들이 참석하여 나름대로의 기량을 선보인 뜻 깊은 연주회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악기 하나쯤 다루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게 아닌가하여 안타까웠다. 그런데 2008년 6월 어느 날, 내 눈에 번쩍 띄는 공문서를 발견하였다. ‘섹소폰 오카리나 교원직무연수'를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때는 지금이다’라는 생각으로 곧바로 참가신청서를 발송하였다. 천우신조인지, 기다림의 선물인지 연수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다.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배우는 즐거움으로 10일간의 연수를 마쳤다. 배우면서 생각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고개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가려면 섹소폰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었다. 작년 8월말 정년퇴직을 하면서 ‘이제는 정말로 한 달만 자유분방하게 쉬고 바로 시작해야지.’하고 다짐했으나 어찌어찌 석 달이 휙 지나가버렸다. 지난 11월 말, 나는 무조건 학원을 찾아갔다. 원장과 상담을 하고 1년분 수강료를 선불해버렸다. 매달 학원비를 납부하려고 했던 생각이 1년분을 선납하면 두 달을 덤으로 더 배울 수 있고, 책임감이 배가된다는 말에 그렇게 한 것이다. 매일 점심을 먹고 두세 시경에 나가서 예닐곱 시까지 연습을 하고 화, 금요일에 레슨을 받았다. 강산을 여섯 번 이상 바뀔 때까지 쓴 손가락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겠는가. 악기를 입에 물었다. 오랫동안 물어본 일이 없는 악기나 내 입에게는 가혹한 형별이었으리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호흡인데 이것은 지금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녀석이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이 매끄럽지 못하게 끊겨서 듣는 이의 귀를 짜증스럽게 만든다. 7월 초 어느 날, 학원에 들어서니 게시판에 덕진공원 야외공연장에서 동호회 주관으로 연주회를 갖게 되니 희망자는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참가하고 싶었지만, 아직 초보자라 관망하기로 했다. 그런데 레슨을 받으러 원장실에 들어가니 참가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노래들이 어울릴 것 같다면서 서너 곡을 짚어 주는 것이었다. ‘응, 나도 할 수 있다고?’ 사람이란 누구나 조금만 거들어주면 용기가 생기고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로 그 착각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곡을 선정하기 위해 악보를 살피며, 반주기를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주제에 눈과 귀가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내 모습이 가여웠는지 선배회원들이 다정하게 가르쳐 주었다. 무대에 올라야할 연주자는 난데, 아내가 더 들뜨는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의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온통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회원 가족들만의 행사이니 그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막내딸과 밖에 나가더니 나비넥타이를 사왔다. 나는 지나친 신경을 쓴다고 했더니 서운한 모양이었다. ‘기껏 마음먹고 사왔는데. 우리의 뜻을 받아주면 좋으련만.’하는 눈치였으나 괘념치 않았다. 출산하러 와있는 막내딸과 마침 토요일이라 집에 온 막내사위를 데리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내딸이 승용차에 꽃다발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핀잔을 주고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그런 준비를 하지 않을 텐데 나만 그런 축하를 받으면 얼마나 멋쩍겠는가. 그런 나에게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딸의 마음도 모르고 박절하게 거절한다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연주회장에 들어서니 우리가 두 번째로 도착했다. 연주장소를 ‘로뎀’으로 바꾼 이유는 시간이나 준비가 원만치 못할 것 같아 작은 장소로 변경했다. 무대의 반짝거리는 조명들이 연주를 앞둔 나를 어지럽게 하였다. 마음은 긴장되었으나 무엇인가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계획된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열다섯 명의 연주자 가운데 네 번째 차례였다. 무대장치나 음향장치가 좋아서인지 앞에 연주한 사람들이 오늘따라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곡목은 정훈희의 노래 ‘꽃밭에서’였다. 반주기에 곡목을 맞추고 시작버튼을 누르자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화면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첫 소절에서부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얼른 마음을 다잡고 악보를 똑바로 보았다. 이런 때를 보고 눈 깜짝할 순간이라고 하는가. ‘바쁘면 돌아가라.’고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반주기의 음악을 귓속 저 깊은 곳으로 음미하면서 음악 속으로 빨려 들었는지 마지막 두 마디가 보였다. 비브라토를 길게 넣어 여운을 남기며……. “파이팅!”, “우~~~~!”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찾아간 내게 아내는 “여보, 잘했어요.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었어요?” 하면서 울먹이는 아내의 모습에 ‘내가 그렇게 감동을 줄만큼 잘했나? 첫 소절에 실수한 것 때문에 개운치 않은데.’ 어쨌든 아내가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막내딸 내외도 실망하지 않은 눈치였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회원 부인도 “선생님, 진짜 잘하시네요.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하면서 칭찬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가 언니를 좋아하니까 이제부터 형부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웬 형부?’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주 만날 인연이라면……. 무대에서 연주자들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입문경력에 따라 음색이나 기교가 차이가 났다. 2부 순서에서는 잠시 쉬고 있는 회원 두 분과 원장의 특별출연이 있었다. 특히 원장의 연주는 장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며 섹소폰에서 흐르는 멜로디에 회원들은 넋이 빠져 버렸다. ‘나도 언제나 저렇게 원숙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괜한 욕심이지. 제 분수도 모르고.’ 연주를 마치고 탁자 앞에 놓인 맥주를 나누며 오늘의 평가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우리를 위로해 주려는 뜻인지 원장은 학원에서 연습한 실력의 60%만 발휘했어도 아주 잘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현란한 조명과 낯선 무대이기 때문에. 회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의 큰 고개를 넘은 작은 마당에서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가슴에 다소 기쁨이 되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오늘 TV에서 들은 ‘태양은 밝게 비치는 찬란한 빛보다 노을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드디어 나도 섹스폰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내친김에 열심히 연습하여 올 연말쯤 가족들 앞에서 섹소폰 독주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201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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