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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5회 작성일 11-07-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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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죄송해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내가 대여섯 살 때면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2년이다. 전쟁의 기억은 별로 없다. 내가 살던 마을이 평야지대에 있었고 국군부대가 자주 주둔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도 중대본부니, 소대본부니 하는 집들이 있는 걸로 보아 빨치산 토벌부대가 장기 주둔한 것 같다. 아버지는 당시 30이 채 못 된 젊은이로 징집 대상자였다. 제 때 소집에 응하여 입대하였더라면 어찌됐을지 모르겠지만 한사코 군에 가지 않으려 한 것 같다. 3대 독자 집안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나라 잃은 죄로 열아홉 어린 나이에 일제 징용에 끌려가신 게 원인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광복을 맞아 어렵게 귀환하였다. 겨우 가정을 꾸리고 농사에 전념하던 차에 또 전쟁이 터져 끌려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참담하셨을까. 이제 가면 꼭 죽을 것만 같았고 실제 전황도 비관적이었다. 아버지는 피하는 데까지 버텨보기로 작정하신 것 같다. 기피자를 찾아내는 경찰의 정보망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일제시대에도 밀대가 동네마다 있었다. 남북의 전쟁, 이데올로기의 대립, 빈부의 갈등으로 한 목숨 숨을 곳이 없었다. 제일 얄미운 사람은 홍 순경이었다. 아버지가 도피하다 밤중에 집에 돌아오면 때맞추어 들이닥쳤다. 할아버지는 돈을 마련하기 바쁘셨고 아버지는 며칠 뒤에 풀려났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였다. 본서本署에서 민완형사를 보내 잡아간 것이다. 철없는 나는 일의 심각성을 알지 못 했고 어른들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묻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행방은 집안의 금기사항이었다. 어느 날 고샅에서 홀로 놀고 있는데, 인상이 좋고 양복을 잘 차려 입은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아마 내 이름을 불러 아는 체를 하고 자기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인데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풍채가 좋고 아버지의 친구라는 데 호감이 갔다.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어찌 그 집, '동기 아재 집'을 알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말이다. 동기 아재 집은 동네에서 윗 거리라고 부르는 곳에 있었는데, 아랫 거리인 우리 집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왕래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저씨를 그 집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이다. 친구가 왔다고 소리쳐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는 그 길로 끌려가셨고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고발한 패륜아로 낙인찍혔고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아주머니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대여섯 살 철부지가 무엇을 알았을까?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속앓이를 하였다. 그러면서 말수가 적은 아이로 자랐고 오직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 아저씨가 정말 미웠다. 그 뒤 경찰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다. 그 감정을 삭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은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금년 기제사 때라도 자초지종을 말씀 드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버지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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