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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전 완주사람들/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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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13회 작성일 11-07-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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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전 완주사람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항상 궁금한 게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집에서 살고, 무슨 옷을 입었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궁금했다. 누가 그림으로라도 그려 보여 주었으면 싶었다. 역사시대 이후에는 문자로 기록한 게 있어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으나 선사시대의 삶은 정말 궁금했다. 전주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의 생활모습을 재현하여 보여주고 있다. 집 모양과 농사짓는 모습까지. 그러나 집안에서 사는 모습은 볼 수 없다. 한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 옛 집터를 발굴하여 고증한 결과를 자세히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금강의 새로운 힘 2100년 전 완주 사람들”이란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는데 곧 마감이라는 메일이 왔다. 진작 가보려던 것을 잊고 있어서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을 풀고 싶었다. 기획전시실로 갔다.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보기 시작했다. 행여 귀중한 것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이 잡듯이 시작했다. 전시자료들은 전주‧완주 혁신도시 공사 터의 문화재를 발굴 조사하여 찾아냈고, 서부우회도로 건설 때 수습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야산이나 밭으로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개발하려다 빛을 본 것이다. 거의 완주군 이서면 지역인 갈동, 신동, 덕동부락 근처에서 나온 것이라 정감이 갔다. 내가 태어난 곳도 그 지역의 야산 끝자락이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몇 백대 할아버지의 무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유물들은 100여 기의 묘에서 나온 부장품들이었다. 당시의 장묘 풍습은 토광묘와 목곽묘에 끼워 묻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남게 된 것이다. 유물들을 보면 청동 칼, 청동거울, 화살촉, 쇠도끼, 쇠 낫, 끌, 새기개, 유리구슬, 숫돌, 덧띠토기, 쇠뿔모양손잡이항아리 등 다양했다. 청동기를 지나 철기시대로 접어 들 무렵의 유물들이다. 청동 칼 거푸집이 나와서 대량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거푸집에는 눈금이 그려져 있어 두 짝을 잘 맞추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갈동 유물 중 화살촉과 쇠 낫은 서 북한 지역에서만 확인된 것이라 한다. 이는 완주 사람들이 뛰어난 기술과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고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피곤하여 의자에 앉았다. 관람객도 없어 조용했다. 눈을 감고 그 옛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내외가 머리를 늘어뜨리고 베옷을 입고 움집의 거적문을 밀치고 나온다. 손에는 낫을 들었다. 아마 밭으로 가는 모양이다. 다 익은 조를 베러 가는가 보다. 어렸을 적 보았던 우리 조부모를 닮았다.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할머니가 어린 아기를 안고서 재운다. 방안을 둘러보니 옷가지가 걸려있고 베 이불과 덧띠토기가 놓여있다. 구석에는 쇠뿔모양손잡이항아리가 언제 쓰려는지 때를 기다리고 있다. 금방 음식을 만들었는지 청동 칼이 물기도 마르지 않았다. 엄마가 쓰는 잔무늬거울과 유리구슬이 번쩍인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다. 옆집에서는 도끼를 들고 나무를 하러 간다. 아마 땔감을 베러 가는 모양이다. 쇠도끼에 자루를 박아 들고 가는데 숫돌로 갈았는지 날이 번쩍인다. 또 한 집에서는 가족이 모두 나온다. 손에는 활을 들고 화살주머니를 메었다. 사냥을 하러 가는가 보다, 채소만 먹다가 고기 생각이 난 것일까. 많은 집들이 모여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정겹다. 해방 뒤에 우리 마을에 떠돌이 생활을 하던 한 가족이 들어왔다. 임자 없는 벌흙덩이에 뙤집을 짓고 살았다. 겨우 방을 하나 만들고 부엌도 없었다. 그 사람이 살던 집이 혹 옛날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았다. 나오면서 그 시절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았으면 어떻게 옛날의 생활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땅속에서 나온 흔적들로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리고 문화재를 발굴하여 기록하고 보존한 학자들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없었으면 고대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학문하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며 돌아섰다. ( 2011. 6.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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