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만나고 싶은 그 트럼펫 연주자/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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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만나고 싶은 그 트럼펫 연주자
김 학
철따라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봄이 오면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경칩 무렵에 들을 수 있는 소리. 강가나 냇가 아니면 저수지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 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이 따뜻한 봄기운에 녹아서 얼음이 깨뜨려지며 나는 그 소리를.
또 봄날이면 고향집 마당에서는 어미닭이 노란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며 모이를 주어먹는다. 삶의 현장 실습에 나선 닭 가족들. 그때 병아리들을 불러 모으는 어미닭의 꼬꼬꼬 소리와 병아리들의 삐약삐약 소리도 듣고 싶다. 이에 질세라 어린아이들이 불어대는 보리피리 소리도 듣고 싶다. 이런 봄의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은 봄날처럼 부드러워진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뒤부터는 봄이 와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가 보다.
여름이 오면 발가벗은 아이들이 냇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그 물소리를 듣고 싶다. 따가운 햇볕에 그을어 온몸이 까맣게 타더라도 마냥 즐거워서 웃음을 뿌리는 그 아이들은 마치 다이빙선수 같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 구별도 없이 모두 용감했다. 그 아이들이 연출하던 그 물소리를 듣고 싶다.
초여름 밤 무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소리가 듣고 싶다. 개구리소리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었다. 개굴개굴 울어대던 그 개구리들의 합창소리에 귀를 맡기고 있으면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이 다 사라져 버린다. 개구리들의 합창을 듣노라면 이 세상의 평화란 평화가 다 모인 듯 즐겁고 행복했다.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그 소리. 그 개구리소리에 귀를 열고 있으면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행복하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날, 깊은 우물 속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꺼내 칼로 수박을 가르면 스르르 수박이 쪼개졌다. 그 수박 갈라지는 소리가 듣고 싶다. 수박의 빨간 속살이 보이면 얼마나 군침이 돌았던가? 도시에도 수박은 있다. 그러나 도시의 수박들은 우물 속이 아니라 냉장고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한 채 갇혀 있다가 나온다. 그러니 우물에서 꺼낸 수박과는 그 정감부터가 다르다.
여름이 오면 매미소리가 듣고 싶다. 고향집 대청에 누워서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노라면 매미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낮잠에 빠지곤 했었다. 그런데 도시의 아파트에 살다보니 매미소리를 들을 수 없고, 산책길에 나서야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로변 가로수의 매미들은 달리는 차량의 소음을 이기려는 듯 악다구니를 쓰며 사납게 울어댄다. 시골매미들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생김새는 시골매미나 도시매미가 다를 바 없지만 목소리는 다르다. 환경에 적응하려고 그런 것 같아 도시 매미들이 안쓰럽다.
가을이 오면 귀뚜라미소리가 듣고 싶다. 도시의 단독주택에 살 때는 고향에서처럼 귀뚜라미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로 옮기면서부터 귀뚜라미소리는 들을 수 없다. 파리나 모기, 개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아파트까지도 올라오지만 얌전한 귀뚜라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와서 노래를 들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도시의 귀뚜라미는 가을의 전령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가을이면 낙엽 밟는 소리가 듣고 싶다. 맑은 가을날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낙엽을 밟으면 낙엽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낙엽은 부서지며 비명을 질러야 빨리 나무의 뿌리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은 그걸 낙엽재귀근(落葉再歸根)이라고 표현한다.
가을이 오면 또 한 가지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내가 듣고 싶어 한 모든 소리들은 자연의 소리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꼭 듣고 싶은 인공의 소리 한 가지가 있다. 트럼펫연주 소리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에서 듣는 게 아니라 라이브연주를 듣고 싶다. 1960년대 초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때 가을밤이면 전주 오목대(梧木臺)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이가 있었다. 계절이 가을이어서인지, 내가 사랑을 느낄 나이여서인지 그 트럼펫연주는 나의 심금을 울렸다. 거의 매일 밤 들을 수 있었던 그 트럼펫연주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았다. 그 트럼펫연주자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거나 군대에 간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밤에 오목대까지 올라가서 트럼펫을 불었으니 그 주인공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을 것 같다. 그 무렵엔 전주공고 밴드부가 가장 유명했었다. 그밖에도 전주고, 전주상고, 전주농고, 신흥고에도 밴드부가 있었으니 그 밴드부 학생들 중 한 사람이 오목대에 올라 트럼펫 연습을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트럼펫연주 소리가 생각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얼굴도 모르지만 그 사람이야말로 가을이면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다.
겨울이 오면 고향에서 듣던 전봇대 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 눈 쌓인 신작로를 걷다가 전봇대 곁을 지나면 전봇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봇대에 귀를 대면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전봇대와 함께 전깃줄도 덩달아 울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그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도시에도 전봇대는 많지만 옛날 고향에서 듣던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도시의 전봇대는 감성이 메말라 울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겨울이 오면 눈길을 쓰는 싸리비소리가 듣고 싶다. 눈이 쌓이면 길이 미끄러워 이웃사람이 다칠까봐 미리미리 비로 눈을 쓸었다. 이웃을 배려하는 따사로운 농촌의 인정이다. 도시에도 눈은 내리지만 농촌 같은 인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도시에서 자기 집 앞의 눈을 집주인이 치우게 했겠는가? 아침마다 골목길에 쌓인 눈을 쓸던 그 싸리비 소리가 듣고 싶다.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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