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잊지 못할 선물 하나/김길남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잊지 못할 선물 하나/김길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15회 작성일 11-07-05 05:55

본문

잊지 못할 선물 하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그는 머시마지만 여자가 해야 하는 뜨개질도 했다. 무명실밖에 없던 시골에서 목도리도 떠서 두르고 다녔다. 학교에 갈 때는 자기가 뜬 목도리를 둘렀다. 다른 아이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복을 입었다. 한복은 소매 끝이 넓어 바람이 제 마음대로 들락거린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겠지만 한겨울 추위를 막기에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요즘 같이 내의가 있어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게 해주지도 못하니 추위를 어찌 이길까. 항상 소매 끝이 시렸다. 그는 아버지에게 토시를 떠서 드리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 무명실 좀 주셔요.” “무엇 하려고?” “아버지께 토시를 떠서 드리려고요.” 어머니는 무명실 꾸러미를 얼른 내어주었다. 마당에 여러 개의 말뚝을 박고 길게 실을 늘였다. 여러 겹으로 하여 굵은 실이 되었다. 손끝에 감아 기본을 삼고 실을 둥글게 감았다. 감은 실 꾸러미가 작은 축구공만 했다. 그날부터 토시를 뜨기 시작했다. 크기를 알맞게 해야 하므로 시작이 어려웠다. 조금 떠서 맞춰보고 틀리면 풀어 다시 떠서 크기를 조절했다. 손목 쪽은 좁아야 하고 팔꿈치 쪽은 넓어야 하므로 코를 늘리는 기술이 필요했다. ‘우리 아버지 손목을 따뜻하게 해 드리자. 아들로 태어나 12살 먹을 때까지 무엇 한 가지 해 드린 게 없다. 첫 선물을 만들어 드리자.’하고 정성을 다해 떴다. 밤늦게까지 한 짝을 떠서 끼워 드렸더니 꼭 맞았다. 다음날 나머지 한 짝을 떴다. 짝을 맞춰놓고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께서 토시를 끼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흐뭇했다. 그해 겨울을 나고 다음 해 겨울이 돌아왔다. 밖에 나갈 때는 토시를 끼고 나갔다. 내색은 안 해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버지는 섣달에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요즘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겠지만 그럴 줄 몰랐다.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고 경을 읽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토시의 사랑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셨다. 입관할 때 그는 아버지에게 토시를 끼워드리자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받은 첫 선물을 가지고 멀리멀리 가셨다. 요즘 같으면 어린 아이들도 아버지 생일에 선물을 드리는 게 보통이고 친구들의 생일선물도 잊지 않는다. 옛날 아이들은 그럴 줄을 몰랐다. 용돈이라는 게 없었다. 어른들도 생일이 돌아오면 미역국을 끓여주는 게 보통이고 잘해야 고깃국 맛을 보았다. 더러는 떡을 해 돌리는 때도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부럽다. 살기가 편하니 이름을 붙여 행사를 갖고 선물도 전한다. 각종 날은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결혼기념일 등 축하하고, 선물하고, 만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이 많기도 하다. 원도 없이 자기의 뜻을 펼칠 수 있다. 80을 바라보는 그는 지금도 한 번밖에 선물을 드리지 못한 한을 눈물로 삭이고 있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많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토시를 끼고 좋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 그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 2011. 6. 28.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