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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粥)/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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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7회 작성일 11-07-0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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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粥)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죽 안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 하면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려서는 맘(맘마)죽, 배탈에 흰(쌀)죽, 쇠약했을 때 영양 죽, 때에 따라 별미 죽, 저승학교 입학을 앞둔 미음 죽 등, 재료와 쓰임의 경우에 따라 이름도 많다. 이 여러 가지 죽은 밥과 달리 필요에 따라 삶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보신과 별미로 먹을 때보다 절약과 연명의 수단으로 먹을 때만큼 비참하고 기막힐 때는 없다. 지금과 달리 옹색하거나 식량을 구할 수 없어서 나는 부득이 죽으로 연명하는 세월을 겪었다. 내 어릴 적에는 왜정(倭政:日政)의 전시통제경제 아래 철저한 식량배급세상이었다. 식민지 조선반도에서는 공출이란 미명아래 착취가 극심해 초근목피의 죽 아닌 죽으로 연명했었다. 일본 본토에서의 배급도 하루 1인당 몇 백 그램으로 통제되었다. 계량 밥(はかりめし)이라 비양 거렸고 죽을 쑤거나 대중식당을 찾아가 장시간 줄을 서서 사 먹으며 식량을 아껴야 했다. 절약을 위한 죽! 어머니께서도 하루 한 끼니는 죽을 쑤셨다. 나는 철없이 ‘밥을 해서 조금만 달라’고 했고, 형은 ‘죽이라도 쑤어서 많이만 달라’는 성격차도 있었다. 일본 국민들도 곤란은 마찬가지였다. 등하교 길에 주택가를 걷다보면 여름이라 더우니 길거리에서 찻물(お茶)로 죽을 끓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도 식량난을 겪어 모자란 식량을 죽으로 절약한 셈이다. 연명을 위한 죽! 형이 들려 준 좁쌀죽 이야기 한 토막이 있는데 '참으로 지겹고도 고마운 죽'이었다 한다. 중일전쟁 종반에 징용으로 중지나(中支那)전선으로 끌려가 양즈강(楊子江) 중류 한구(漢口)근처 일본군부대 비행장(무선통신사 군속근무)에 배치되었다. 종전 무렵 일군에서 탈출하여 만고(萬苦) 끝에 광복군을 찾아 입대하여 베이징(北京)에 주둔하며 귀국을 대기 중이었을 때다. 중국정부의 식량지원을 받았는데 겨우 좁쌀이었다 한다. 죽을 쑤어 한 끼니 한 대접으로 연명했었다. 이 한 대접의 죽이 진기 없는 좁쌀(조: 매서숙)이라 죽물이 위 아래로 가라앉아 맹물과 같은 죽으로 몇 개월간 연명했다는 기막힌 사연…….(고인이 된 : 형의 광복직후 광복군 대원으로 조국에 귀환하려 할 때 이야기 중에서) 보신을 위한 죽! 잣, 전복죽,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최고급 죽이랄까? 쇠약해져서 회복을 위한 분, 아주 여유가 있는 분들의 보신용 죽이다. 그러나 병자를 위해 부담 없는 깨 죽,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공식품으로도 깨죽이 있다. 일반대중에 적합하고 흔히 문병 때 활용하기 좋다. 근래 뷔페식당에 가면 즐겨 먹을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이다. 별미를 위한 죽! 동지죽(새알 팥죽)이 대표적이다. 액막이로 시작되었다지만 별미로도 손색이 없다. 동지죽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 해서 먹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지팥죽이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로 언제 먹어도 쾌식할 수 있어서 좋다. 닭죽, 녹두죽 등 끓이는 재료에 따라 종류와 이름도 많다. 지금은 죽을 생업으로 삼는 이도 생겼다. 그런데 살다보면 죽 한 그릇 끓일 줄 몰라 따분할 때도 있다. 갑자기 환자가 생겼을 때 당황한다. 흔히들 아내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죽 쑤기가 쉽지 않다. 쉬운 것 같지만 솜씨 없이 끓인 죽을 잘 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맛이 없다고 거절당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으니까! 몸이 좋지 않아 누웠을 때 아내의 정성어린 죽 한 그릇으로 일어났으니, 그 공을 갚지 못하다니! 어린이들의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 한때 잉여농산물인 옥수수(옥분)죽은 춘궁기(春窮期), 칠궁기(七窮期)를 겪어야했던 1950~60년대는 참으로 긴요했다. 죽은 건강한 사람보다 어린이, 노약자, 병약자, 식욕상실한 사람에게 별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다. 죽은 너그럽고 융통성이 있다. 나누어먹기 부족하면 물 좀 더 부으면 된다. 흔히들 일을 하다 잘 안되거나 실패했을 때 ‘죽 쑤었다’고들 하는데 잘 못된 말인 것 같다. 죽과 같이 먹기 좋고 효용가치가 많은 게 어디 있는가. 속담에 왜 ‘죽 떠먹은 자리’라 했을까? 사람들도 죽과 같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상처가 나도 여유 있고 너그럽게 잘 어울리는 삶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2011.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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