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도 자식걱정을 하시는 부모님/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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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도 자식걱정을 하시는 부모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주간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오늘은 부모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려고 한 날이다. 오늘부터 장마가 온다고 예보하니까 내 마음이 더 바빠졌다. 왜냐하면 장마가 시작되면 지금 자라고 있는 풀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더 자라서 부모님이 호흡하시기에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아침 5시로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4시경에 잠이 깨었다. 그러나 한 숨 더 자려고 다시 눈을 붙였지만 헛수고였다. 일어나서 쌀을 씻어 놓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쌀이 불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지난 토요일 서울 아들 집에 갔기 때문에 내가 밥을 지어야 했다. 잠시 후 불을 붙이고 기다렸다. 요즘은 압력밥솥이 있어서 밥 짓기가 수월하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밥상이다. 아내가 차린 밥상만은 못하지만 내가 차린 밥상이기에 밥맛이 더 좋았다.
마실 물과 땀 닦을 수건 등을 챙기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이, 오늘 꼭 해야 되는데 어쩌지?’ 하면서 마당으로 나가 비설거지를 하고 안으로 들어와 잠시 기다렸다. 그랬더니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가 멈추었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니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얼른 하고 올 생각으로 남고산성에 있는 산소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6시 18분이었다.
아직 아무도 일터로 나오지 않은 이른 시간에 나는 예초기를 돌렸다. 인생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처음 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할 때는 낫으로 아내와 땀을 뻘뻘 흘리며 한나절을 고생해야 했다. 아내는 부모님 산소 벌초에 대하여 나보다 더 챙기는 편이다. 시부모님 벌초를 챙긴다는 것은 누구나 쉽지 않은 일인데도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마음이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 혼자여서 매우 허전하였다.
부모님 산소 주변에 여섯 집의 산소가 있다. 바로 옆집 산소는 며칠 전에 만든 봉분이어서 보기가 좋았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이발을 한다. 젊어서 같으면 20일쯤에 한 번씩 이발을 했는데, 이제는 타인으로부터 관심 밖인 몸이라 기간이 늘어진 것이다. 그것마저도 바쁘다보면 40일 만에 할 때도 있다. 지난봄 4월과 5월에 잡초를 뽑고 제초제를 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가물어서인지 그렇게 보기 싫지는 않아 다행이다.
오늘따라 예초기가 짜증을 내지 않으니 1시간여 만에 예초기 작업을 마쳤다. 다음은 풀을 갈퀴로 치웠다. 그리고 괭이로 위쪽에 있는 도랑을 치면서 비가 내릴 때 산소로 흐르지 않고 바로 옆으로 빠지도록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물을 마셨다. 이렇게 물이 맛있는 음식인 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물을 마시면서 내가 벌초한 부모님 산소를 멀찍이 앉아서 바라보니 매우 흐뭇하였다. 이제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늘그막에 낳은 자식을 위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걱정만 하시다가 가신 분들.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부터 자식의 책가방을 들어다주신 아버님은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도 퇴근하는 자식의 도시락가방을 받으러 나오신 사랑의 실천가이셨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자식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40리길을 멀다 않고 익산 시내 집집마다 돌아다니셨던 어머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자식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함께 아파주셨던 우리 부모님, 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미끄럼을 타다가 넘어져 왼쪽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그날 저녁 내내 아파 울면서 밤을 샐 때, 나를 붙잡고 함께 날을 샜던 일들은 잊을 수 없는 일들이다.
가난해서 줄 것도 없지만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오두막집을 찾는 길손들(새우 젖, 엿, 방물, 비단 등을 파는 사람)에게 나눔을 베푸신 어머니. 그 어머니는 300여 호나 되는 큰 동네의 임산부에게 무자격 산파역을 담당하셨고, 아기의 이렛날이면 삼신님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기도도 빼놓지 않으셨다. 이런 넓고 깊은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그 복을 받아 행복하게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으리라.
아버님은 78년에 어머님은 88년에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외아들인 나는 고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 불길한 일이 예견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내의 꿈에 나타나셨다. 한두 번 경험을 하고서야 다가올 일에 대한 지혜를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저승에 가셔서까지 자식을 사랑한 부모님들이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아내가 말할 때 나는 매우 허전하였다.
참깨 지주를 세우기 위해 대나무를 3개째 자르고 있는데 빗방울이 거세어졌다. 부모님께서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그만하고 어서 집으로 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말끔히 정리된 두 분 묘소 앞에 서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큰절을 올렸다.
자식이 어떻게 부모님의 사랑을 따라갈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부모의 넓고 깊은 사랑을 느꼈으리라. 내가 그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자식들과 이웃과 함께 나누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일이다.
(201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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