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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지혜 wisdom of grand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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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29회 작성일 11-06-16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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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지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할머니를 생각하면 여러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의 조각을 하나둘 맞춰보다 할머니의‘지혜'에 깜짝 놀라곤 한다. 할머니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시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를 거치며 언제 글을 깨우칠 여유가 있었을까.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가난한 농가에 시집을 오셔서 60년을 힘들게 사신 분이다. 그런데도 길눈이 밝고 총기가 뛰어나 서울 아들집이나 친척들을 찾아다니는데 막힘이 없었다. 당시 신문이나 라디오를 접하기가 쉽지 않아 삶의 지혜나 생활 정보는 오로지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서만 얻으셨다. 할머니는 아들, 손자들이 면학에 태만하면‘영리한 놈이 부지런한 놈을 못 따라간다'고 엄히 경계하셨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진득하라면서‘자발귀신은 무랍도 못 얻어먹는다'고 하셨다. 남에게 신세 지고 보답하지 않을 땐‘안 마신다 침 뱉고 돌아선 우물에 다시 오는 법'이라고 질책하셨다. 유별난 행동을 하면‘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깨우쳐 주시고, 분수에 넘는 것을 바라면‘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말리셨다. 나는 분수에 맞게 사는 안분지족安分之足의 생활을 좋아하는데, 이는 가정교육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떨어지면‘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격려하셨고, 지나친 낙관에는‘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일침을 놓으셨다. 이웃 처자가 사내를 몰래 만나면‘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혀를 차셨고, 아버지에게‘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나무라셨다. 할머니는 산야에 나는 약초에 대하여 두루 잘 아셨다. 길가에 흔한 질경이, 쑥, 쇠물팍, 익모초, 민들레 등의 효능을 익히 알아 단방약으로 이용하였다. 할머니는 요즘의 가정 주치의나 가정의학과 닥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할머니는‘거지도 깨끗해야 얻어먹는다'며 궁핍할수록 단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당신께서는 아침을 굶어도 곱게 차려 입고 길을 나서면 치마폭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고 이웃 아주머니들이 말하곤 하였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가난한 이웃과 시주승에겐 바가지 가득 곡식을 나눠주며‘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6남매를 탈 없이 키우고 근면과 내핍으로 가산을 늘리셨다. 일제시대에는 징용으로 끌려간 아들의 소식이 없어 애간장을 태웠다.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놓고 조왕신께 무사귀환만을 빌고 또 빌었다. 6. 25 때는 서울 친척집에 보낸 어린 남매의 생사를 알 길이 없어 가슴이 시커멓게 탔다. 훗날 모두 무사하게 귀환한 것은 할머니의 지성스런 간구의 결과였으니,‘지성이면 감천한다'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하신 것이다. 일본 기마부대의 보급병으로 징용되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가까스로 살아오신 이가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다. 할머니는 너무 허망하게 세상을 뜨셨다. 어느 여름날 나뭇단에서 보릿대를 빼다 쓰러져 그길로 이승을 하직하신 것이다. 잠깐의 고통도 없이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돌아가셨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종명考終命인지. 벌써 30년이 더 지났다. 금년 한식에 이장을 하며 할머니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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