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달빛/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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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달 빛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산 너머 달빛 속에는 50년 전 내 생의 일부가 잠겨있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오늘날까지 흘러온 추억들은 지금도 내 주위를 맴돈다. 그러면서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나를 챙겨 주었다.
대학 1학년 때 내가 살던 곳은 시내에서 약 십리쯤 떨어진 전주 중화산동 네거리(지금의 완산구청 맞은 편)였다. 주위에는 야산과 논밭이 있었다. 앞에는 조그마한 유수지가 하나 자리 잡고 있는 도시 변두리지역이었다.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지라 모든 것은 노동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 무렵, 나는 어머니와 형과 함께 오리정골(완산구청 뒤)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든 생활을 했다. 경제난으로 온 나라가 어려워 보릿고개를 자주 넘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아다녔지만 여의치 않았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헛걸음은 무겁기만 할뿐……. 선 너머 고갯길(예수병원 고개)을 비추어 주는 달빛과 함께 걷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꼭 새벽공기를 가르며 가족들과 함께 땔감을 구하러 갔었다. 삼천천 천변을 따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중인리로 접어들었다. 산기슭 키 작은 소나무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솔방울을 열심히 따 모았다. 점심으로 먹는 주먹밥은 꿀맛이었다. 배부른 솔방울 가마니들이 여기저기 진을 치고, 서산에 햇살이 뉘엿거리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이내가 가라앉아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솔방울들이 손수레를 타고 달렸다. 어머니와 형은 항상 좁은 지름길로 다녔다. 그러나 수레바퀴는 우마차가 다니는 넓은 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덩달아 나는 항상 2km정도를 돌아서 다녔다. 솔방울을 잔뜩 싣고 돌아오는 둥굴레 길은 고달팠다. 그래도 절반 쯤 올 때까지는 어머니와 형이 곁에 있으니까 괜찮았다.
갈림길에서 저 멀리 아물거리며 사라져가는 어머니와 형의 뒷모습을 보았다. 바람결에 희미하게 실려 오는 형의 노래는 가냘픈 시름을 날렸다. 땅거미가 놓아준 달맞이 길 따라 외로운 시오리 행군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산 너머 달빛은 잦아진 노랫가락 대신 내 등을 밀어주며 손수레를 따라 동행을 했다. 달 하나 나 하나……. 달 백, 나 백……. 그러다 나도 모르게 피곤에 지친 발걸음은 길가 낯선 이정표에 기대고 선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천에 뜬 달빛이 시야를 밝히며 발걸음을 재촉하라고 꿈을 접어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톡톡 튀며 타들어 가는 솔방울 불빛이 아궁이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저녁 밥상에 앉아 기다리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그리며 손수레 바퀴가 굴러갔다. 동구 밖에서 형이 맞아 주었다.
힘들 때면 집 앞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마음을 달랬다. 야산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언제쯤 이 고생을 면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키 큰 소나무 아래 잔디밭에 앉았다. 그리고 산 너머 달빛이 상영하는‘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관람했다. 그 속에서 나의 꿈을 찾아 헤맸다.
거기에 살면서 군軍에 입대했다. 눈물을 글썽이시며 방죽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머님.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했던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에서 군대생활을 시작했다. 한 해를 넘기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서 아흔아홉 구비 고갯길을 확장하며 3년을 채우고 제대를 했다.
대학에 복학을 했다. 지금의 전주시청자리에 있던 전주역까지 걸어서 45분, 익산까지 통근열차로 1시간, 익산역에서 전북대학교 공대까지 30분이 걸렸다. 이 타임터널을 3번 지나치니 졸업이었다. 그 무렵 나는 항상 국방색 작업복을 검게 염색한 옷을 입었다. 같이 통학하는 여대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석탄가루 휘날리는 기차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3년 동안 철길을 오가며 젊음을 불태웠다.
사위가 퇴직기념으로 마련해준 승용차로 여행길에 올랐다. 가족들과 함께 동해안 길을 따라 강원도 곳곳을 누볐다. 설악산을 가면서 인제 원통을 지나 한계령을 넘었다. 군대시절의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지금도 나는 휘영청 달이 밝은 밤이면 안방 창가에서 산 너머 달빛이 연주하는 세레나데를 들으며 삶의 리듬을 되찾곤 한다.
(2011.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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