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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구 수필집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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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11-05-31 15:40

본문

<이신구 수필집 발문> 팔방미인 수필가의 수필의 길 달리기 -石河 이신구의 첫수필집 《》출간에 부쳐- ♨ 1. 수필가 石河 이신구의 문학 환경 수필가 石河 李信九, 그는 1942년 2월 1일,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임피면 보석리 보암마을에서 아버지 李忠來와 어머니 蔡良女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느새 고희를 맞은 이신구는 전주이씨 왕손(益安大君)이다.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었으나 학문과 문벌을 숭상하던 선비정신을 척추로 여겨온 핏줄이었다. 양반놀음에 휩쓸려 가산은 기울었고, 그나마 6‧25한국전쟁 직후 창궐한 전염병으로 부친마저 여의고 나니,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마을 어르신들에게 신동(神童)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자랐으나, 물려받은 가난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당시 해마다 흉년이 들어 대부분의 농촌사람들이 굶기를 흥부 밥 먹 듯하며, 냉수로 주린 배를 채우던 그 시절에 石河도 굶기를 밥 먹 듯하며 자랐다. 소년 이신구는 대여섯 살 때 어른들도 어려워 읽기 어렵다는 시제홀기(時祭笏記)를 줄줄 외워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군산사범학교에 특대생으로 입학하였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정읍산성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여 가난한 제자들에게는 항상 베풀며 교직생활을 하였다. 정열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정년퇴직 이후부터는 공무원연금공단이란 신판효자가 있어서 든든하다. 그 신판효자는 매달 같은 날짜에 연금을 저금통장에 넣어주고 있어서 즐겁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어릴 때는 신동(神童)이란 칭찬을 들었고 늘그막인 지금은 복로(福老)가 된 셈이다. 수필가 이신구, 그는 세 아들을 두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그의 뜻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 교감, 장학전문직을 거쳐, 교장까지 42년 동안의 긴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2모작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모작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쳤듯이 2모작 인생 역시 모범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교직에서 물러서자마자 실버 플래너(Silver Planner) 교육을 받고, 바람직한 노년의 인생교육을 선도하고 있으며,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위촉한 에듀 닥터(Edu-Doctor)로서 청소년 선도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업개선 및 교육 컨설티어(Conseltier)로 활동하면서 후진 교사들의 교수학습지도 및 연수를 책임지고 있으며, 상담심리전문가 자격을 획득하여 평생고객이던 학생들을 위한 상담자원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수필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우는 등,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石河 이신구, 그는 책과 글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좋아한다. 친구 모임엔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술잔을 기울인다. 동창친구와 고향친구, 직장친구는 물론이요, 2모작생활을 하면서 만난 문단친구들까지 갈수록 교제의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친화력과 인덕까지 갖추고 있는 石河 이신구, 그는 술복(酒福), 친구복(友福), 글쓰기복(文福) 등 세 가지 복에 흠뻑 빠져 노후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石河 이신구, 그가 수필과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친구요 문우인 둔산 김상권의 권유로 2009년 2월부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서 수필을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수필과 가까워졌다.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거의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샐 줄 모른다더니 완전히 수필에 빠진 듯 보인다. 내가 강의실에서 늘 강조한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력하더니 수필전문지 월간《수필과 비평》2010년 9,10월호에서 <깜밥>으로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당당히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나는 등단 수필가들에게 등단 뒤 3년 안에 수필집을 출간하라고 권한다. 그만큼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하라는 뜻이다. 모범생인 수필가 石河 이신구는 그런 내 뜻을 잘 따라주더니 마침내 이렇게 첫 수필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6월이면 마침내 이신구의 처녀 수필집 《 》이 선보이게 된다. 그가 쓴 수필작품 중에서 65편을 골라 7부로 나누어 실었다. 이 수필집《 》은 행촌수필문학회 회원으로서는 52번째 수필집이다. 이 수필집이 나오면 아직도 수필집을 출간하지 못한 행촌수필문학회 선후배 수필가들이 더 자극을 받으려니 싶다. 2. 이신구 수필의 맛과 멋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알베레스(R.M.Alberes, 1921~)는 <20세기 문학의 총결산>이라는 글에서 "수필이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환상적 이미지로 쓰인 글이다."라고 했다. 또 김광섭은 "인간미를 보여줄 흥미나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수필은 쓸 수 없다."고 갈파했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가의 다양한 체험은 다채로운 수필을 빚을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또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라고도 했다. 모름지기 수필가라면 육안(肉眼)으로 본 것만을 전부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심안(心眼)으로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잡학박사가 되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을 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직관과 사색으로 그 본 것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영국 작가 Leggett의 말은 백 번 옳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가르침이다. 石河 이신구의 수필에는 깊은 사색이 있는가하면, 번득이는 유머와 위트가 있다. 이제 늦깎이 수필가 이신구의 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응원과 함성이 진동하고 최종 결승이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 웅성웅성하며 재훈이를 밀쳐내기에 아마 우승자와 재훈이가 한 판 붙나 했었다. 그런데 웬걸 상대가 없는 걸 보니 담임인 나와 대결하라는 눈치였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안된다고 하자니 담임 체통도 있고, 해 보려니 나는 경험도 없었다. 뼈가 굵어도 내가 더 굵고 나이가 있는데 설마 망신이야 당하겠나 싶어 망설이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모래판으로 나오니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막상 맞붙고 보니 보통이 아니었다. 샅바를 잡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넘어질듯 하다가 다시 밀치고 한참을 휘돌리다 보니 내가 휘돌리고 있지 않은가? 몇 번을 이리 밀고 저리 밀며 다리를 들어 내치려면 오뚝이처럼 다시 반격을 했다. 설마 재훈이가 나를 내동댕이치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느긋이 풀어주자 사정없이 들어 메치는 통에 나는 그만 나뒹굴고 말았다. 애들의 함성 속에 모래투성이가 된 나를 일으키는 재훈이의 얼굴을 보니 승리감보다 송구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야! 우리 재훈이가 천하장사네, 정말 잘하는데?” 박수로 재훈이를 칭찬해주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주었다. 재훈이는 몹시 쑥스러워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그날 이후 나는 학생과의 어떤 대결도 해본 일이 없다. <왕초보 교사> 중에서 열아홉 살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된 석하 이신구의 뇌리에 깊이 박힌 한 편의 삽화다. 마치 한 컷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사제동행(師弟同行) 하던 시절의 교단풍경이 마치 조선시대의 민속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학교에 등교한 강엽군은 기초학력도 부족한 터에, 장기결석으로 방과 후 1-2시간씩 특별 개별학습을 해 주었다. 할머니는 늦으면 으레 마중을 나오셨다. 늦게까지 개별지도를 받고 가는 강엽이는 생활이 곤란하여 도시락도 지참할 수 없었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처음에는 내 도시락을 넘겨주었으나, 나중엔 아예 두 개의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해서 하나는 슬쩍 넘겨주었다. 그 뒤 강엽이는 주는 도시락을 가끔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친구들의 눈치 때문인 것 같아 생각 끝에 하숙집 아주머니와 짜고 점심시간 심부름을 보내면 점심을 먹여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그 뒤 하숙집에서는 하숙비를 더 주어도 받지 않아 고기나 간단한 선물을 드렸다. 나에게도 보릿고개를 겨우 넘길 때까지 도시락 작전은 계속되었다. 6․25사변 직후 내가 초등학교 시절 심한 흉년에 보릿고개로 인해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담임선생님의 도시락은 두렵고 계면쩍으면서도 꿀맛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친구들의 놀림이 두려워 선생님 도시락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나를 찾아와 숙직실에서, 학교 뒷산에서 도시락을 전해주시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점심시간에 배고픔을 참으며 학교 뒷산 묘지 뒤에서 숨어 지냈던 그때의 추억이 새롭게 돋아난다. 당시 김 선생님을 아무리 수소문해도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그때 내가 받은 그 도시락을 지금은 강엽에게 물려준 것이니 그게 바로 ‘도시락 릴레이’가 아닌가. <도시락 릴레이> 중에서 4월 20일 월요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KBS '장애인의 날 특집방송'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적장애 2급인「영수」의 감동적인 통합교육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메아리칠 때, 나는 문득 현직에 있을 때 영수가 아닌 지적장애 2급이었던 ‘경수’의 ‘거시기 사연’이 떠올랐다. (중략) 참 착하고 동정심이 많던 경수, 인정도 많고, 학용품과 간식도 항상 친구에게 양보할 줄 알며, 앞장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투는 친구가 있으면 무조건 가운데 들어가 말리며, 심부름을 서로 하려고 다투는 착한 아이였다 .‘거시기, 경수야!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어 지금쯤은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했기를 바란다.’ 지금 그 ‘거시기’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교사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언제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른다. 그때 그 선생님과 그때 그 아이들이 마냥 그립다.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어린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화자의 모습이 그림처럼 예쁘다. 그래서 교직을 성직(聖職)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늦은 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반백이 된 여인과 소년이 가마니를 이고지고 철교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기적 소리 요란히 화물열차가 달려오고 있는데, 다리를 다 건너려면 아직도 수십 개의 침목을 더 건너야 한다. 두 사람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마음만 바쁘지 발길은 떨리고, 비틀 비틀 엉금엉금 헛발을 디뎌 금방 가마득한 다리 아래로 내 동댕이질 칠 것 같은 위기에 정신없이 침목을 건너 뛰어 땅에 발을 디뎌 짐을 내 동댕이치는 순간, 요란한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는 지나가 버렸다. (중략) 어머니께서는 평생 마음고생이 많으셨으리라. 먼 이국땅에서 생사를 모르는 큰딸, 자식들을 못 먹이고 못 가르치는 괴로움, 가세가 기울자 엎친데 겹친다고 먼저 떠난 지아비. 그러나 그렇게 홀어미가 키운 자식과 손자들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보고 계셨던가? 각계 유명인은 못되었어도 그런대로 사람노릇을 하고 있음을 보시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오늘날 풍요로움을 즐기는 후손들은 그 시절 그 이야기는 전혀 실감하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때 생각을 더듬는 나도 이젠 많이 늙었다. <糟糠之節> 중에서 가정은 추억의 보고요, 가족은 추억의 주인공들이다. 어느 시인은 어머니를 '움직이는 고향'이라고 읊었다. 어머니의 모습과 차림새, 어머니의 목소리와 솜씨 등 모든 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진원지가 된다. 누구에게나 그건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훌륭하신 어머니 덕에 오늘의 石河 이신구가 존재하고, 또 그가 있었기에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가 있을 것이다. 그 가족들은 수필가 이신구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사내아이들은 나면서부터 말썽꾸러기였다. 겨우 기어 다닐 때부터 틈만 나면 어디로 기어가서 물건을 뒤집어놓고, 때로는 틈새에 끼어 낑낑거리며 울고, 올라갈 곳만 있으면 잡고 올라가다 쿵하고 떨어져서 울었다. 조금 더 자라자, 연년생끼리 꼭 달라붙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일을 저지르고는, 혼날까 봐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일렀다. 좀 나이가 들자 꼭 붙어 다니고, 따라다니면서 뚝딱하면 한 쪽을 울렸다. 누가 잘못했는지 그 누가 알랴.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더니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형 말이 부모 말보다 더 위력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망아지 날뛰듯 천방지축 어질러 놓고 부수고 엎어놓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다 치우고 나면 한나절이 걸렸다. (중략) ‘못난이 3형제’는 나름대로 정말 못난이 3형제답게 자랄 때부터 천방지축이었다. 개성이나 성격도 다르고 공부하는 것도 판이했다. 3형제를 키우면서 수월성 발양도 중요하지만, 각자 자아정체성을 찾고 긍정적 자아개념을 길러주어 건전하고 튼튼한 심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못난이 3형제> 중에서 아들만 3형제를 기르면서 어찌 추억이 없으랴.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성가를 하여 손자손녀를 낳으면 얼마나 집안이 번창할 것인가? 그런데 석하 이신구 수필가는 고희(古稀)를 넘긴 지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손자손녀가 없다. 석하 이신구 수필가는 집안에서는 구경꾼이자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史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가족의 중심인 아내와 며느리의 끈끈한 고부간의 정겨운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구경꾼이다. 동서고금의 문제였던 고부관계가 이신구 수필가의 집안에서는 해소되어 버린 것 같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이 집안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친정엄마와 딸 사이로 바뀐 것 같다. 이런 집안의 정경을 바라보면서 이신구 수필가는 허허 웃으며 한 편의 수필을 빚는다. 며느리는 참 상냥하고 애교가 많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문안 전화도 자주하고 “어머니, 엄마!” 하는 소리가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 며느리 전화만 오면 아내는 목소리부터 변한다. 내성적이고 말이 적은 아내는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없어 밖으로 표현을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상냥하고 정이 넘치는 며느리의 성품에 아내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며느리와 죽이 척척 맞게 대화를 한다. 풋고추와 절이 김치 같다. 며느리가 저리도 좋을까, 도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주고받는 것일까? <풋고추와 절이 김치> 중에서 “지난겨울 우리 둘째아들 주례를 해 주셨던 상철이 부친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문상을 갔지. 웃옷을 벗어 옆자리에 접어놓고, 막 조문하려고 허리를 굽히는 찰나 '닐리리아, 니나노!' 하는 벨소리가 울려 당황한 나머지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조문객들이 킥킥거리며 웃더니 나중엔 폭소를 터트리더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흔들려.” 그러자 이번에 동악이 한마디 거든다. 기왕 벨소리가 나왔으니 내 말 좀 들어 봐. 지난 일요일 미사를 드릴 때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고 영성체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어디선가 '반야 밀다 심경, 똑 똑 똑……' 하는 소리가 나니 얼마나 당황했겠나? 신부님은 어안이 벙벙해 하는 교우들을 보고, “어허, 길 잃은 불도께서도 이 성찬에 초대를 받으셨군요.” 하셨다. <천방비축 벨소리> 중에서 石河 이신구 수필가는 술자리에서도 입담이 좋은 편이다. 그가 빚은 <천방지축 벨소리>는 유머수필의 전형이다. 수필에 유머와 위트를 담으라고 한 것은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는 거의 9할 이상이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한다. 그런데 수필마저 그런 전철을 밟는다면 독자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수필에서의 유머는 독자들이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숨구멍 역할을 해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숨구멍, 따라서 모름지기 수필가들은 유머수필을 즐겨 쓸 필요가 있다. 석하 이신구 수필가는 본격적으로 유머수필 분야에 정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꽃무릇은 수선화과로 여름엔 자취도 없던 초록빛 꽃대가 쑥 자라나 붉은 꽃을 피운다하여 상사화(相思花), 석산(石山) 또는 피안화(彼岸花)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자기도취나 과욕과 자기애에 빠져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거나 망치는 일에 비유하여 꽃무릇의 꽃말은 많은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객관화된 자신의 참모습을 냉철하게 보고 자기 모순에 빠지는 일이나, 서둘러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백안(白顔)의 소녀와 다정다감했던 내 친구 최 선생의 애절한 사랑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곳 선운사에 오면 나는 꽃무릇처럼 애닲게 살다가 이승을 떠난 친구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피안화의 추억> 중에서 상사화는 기다림의 꽃이다. 잎은 꽃을 기다리고 꽃은 잎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잎은 꽃을 만날 수 없고, 꽃은 잎을 만날 수 없다. 그게 그들의 운명이다. 상사화의 전설은 애달프다. 화자는 자기 친구의 애절한 사랑이 상사화의 전설 같아서 더 가슴 아파한다. 만날 수 있는 기다림과 만날 수 없는 기다림, 이 모든 기다림은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음속에 묻어야할 기다림이다. 그래서 기다림엔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다림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저버릴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기다림이 있는 곳에 꿈과 희망이 있고 평온이 있다. 누군가를 평생 기다리다 생을 마감한다면 그 또한 행복을 품고 갈 수 있겠지. 그 기다림 속에는, 연인이나 가족, 친구도 있으리라. 어느 학자가 조사한 바로는 사람들은 ‘만나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기다림 속엔 꿈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그 마음속엔 그림자가 있다. 인생사는 마냥 기다리고 기다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기다림> 중에서 엮어지는 매듭마다 절절히 맺힌 사연/ 춤추는 손끝마다 꽃피고 새가 우네./ 하얀 밤 뜨개질에 산이 되어 침묵하고/ 파란 낮 뜨개질에 강이 되어 노래하고/ 지는 노을 황금빛에 새 삶을 비춰본다 언젠가 통근할 때 차안에서 뜨개질을 하던 노 여교사가 흥얼대던 노랫가락이다. (중략) 뜨개질을 하는 분의 눈과 표정을 보면 안다. 과연 누구를 위하는 잽싼 손놀림인가를. 뜨개질로 만든 모자, 장갑, 목도리는 그것으로 인한 따사로움보다는 한 땀 한 땀의 매듭에 엉킨 따뜻한 마음이 받는 이의 가슴속까지 전해지리라. 파란 가을 하늘과 누런 들판을 바탕삼아, 정과 사랑을 뭉쳐 뜨개질을 하는 그 여인의 마음은 황금빛 노을에 새롭게 펼쳐질 꿈을 엮는 듯하였다. <뜨개질> 중에서 수필가 이신구는 매사를 허투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바로 한 편의 수필로 빚어진다. 뜨개질하는 여교사 이야기도 수필가 이신구의 눈에 띄었기에 수필의 소재가 된 것이다.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요, 세상만사가 다 수필의 소재이며,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다 수필의 소재라는데 어찌 모든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아야 하겠는가? 길에는 4단 7정 (四端 七情)이 있다. 길에는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고, 만나는 사람 뒤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진다. 오늘도 길을 간다. 이 길은 인생의 길이다. 길은 끝이 없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걷는 길 가는 길도 목표지점이 있을 뿐 끝이 없다. 인생이 가는 길도 지향점과 삶의 목표가 있을 뿐 끝을 헤아릴 수 없으며, 마음의 길도(희망, 바람)도 그러리라. 길은 처음 개척한 사람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처음 개척한 사람의 의도와 깊은 뜻을 그대로 생각하거나 따라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략)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걸어왔던가? 아무래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다가 시멘트 길에 주저앉지 않았나(?) 하는 푸념이다. 나의 길, 그 끄트머리쯤에 와 있는 지금,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건만, 나는 온 길을 모르듯 갈 길도 알 수 없다.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까지 어떤 길로 갈 것인가? <나의길 인생길> 중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말씀을 물소리에서 찾기로 했다. 비를 내리고 천둥번개를 치는 것도, 바다의 파도소리도,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하느님이 주신 소리이지만 쉴 새 없이 우렁찬 소리를 내는 폭포가 아마 하느님의 소리요 말씀이리라. 그 폭포를 타고 오셨다가 민심을 살피시고 승천하시리라. (중략) 우리는 언제나 물과 같이 생활한다. 나는 오늘, 하느님과 말을 나누는 물, 이 폭포수에서 잡다한 시름과 세상 먼지를 모두 털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롭게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비천> 중에서 수필가 김규련은 "수필은 시로 쓴 소설이요, 소설로 쓴 철학이요, 언어로 그린 명화요, 뜻으로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수필은 거짓 없는 자화상이다. 미래문학의 주류는 수필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石河 이신구 수필가는 시루떡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철학, 교육철학, 생활철학, 종교철학 등을 차곡차곡 쌓아서 찐 시루떡 같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맡에서 울리는 탁상시계소리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 탁상시계의 ‘째깍 째깍’ 하는 소리도 괘종시계의 ‘똑께, 딱께’ 소리 못지않게 밤잠을 설치게 하는 때도 있다. 지난달 이사를 하면서 보니 꼭 옛날 외가에서 보았던 커다란 괘종시계가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었다. “똑께, 딱께, 똑께, 딱께 ……… 뎅, 뎅, 뎅” 그때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고요한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 그 소리는 우주만물이 살아있음을 뜻하는 마음의 소리였던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아득히 멀어져가는 아쉬움의 울림이었던가? 태엽을 감아주어야 했던 그때, 내 가슴을 쿵쿵거리게 하고, 잠을 못 이루게 하며, 새벽을 깨웠던 시계가 이제 그 생명과 역할을 다 했다. 인생의 삶과 고뇌를 함께한 시계를 뒤돌아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새삼 느꼈다. <똑께 딱께> 중에서 수필가 이신구, 그는 어려서부터 깜밥을 무척 좋아했다. 어머니가 긁어주시는 깜밥, 아기신랑이 나이 많은 색시에게 긁어달라고 부탁하는 깜밥은 군입거리로는 최고였다. 쫄깃쫄깃하며 고소한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깜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石河 이신구는 그 <깜밥>이란 제목의 수필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으니 이신구 수필가와 깜밥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깜밥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밥 뜸 들이는 구수한 냄새를 좋아했다. 어느 때던가 친척 잔칫집에 갔을 적에, 큰 가마솥에서 나는 구수하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입맛을 당기던 냄새에 끌려, 부엌을 기웃거리다 부지깽이로 쫓겨났던 일, 깜밥을 긁어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깜박 잊고 물을 부었을 때의 아쉬움, 밥을 짓는 엄마의 치마끈을 잡고 어서 깜밥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때, 어느 때는 밥을 푸고 난 뒤 보면 깜밥이 없어, 서운하고 속상해서 울먹였던 시절, 그 시절이 생각난다. (중략) "구수한 깜밥이나 숭늉 없나?" "별 개꽝스런 말씀을, 시골 잔칫집에나 가서 찾으시지……." 88번 손질을 거쳐 쌀(米)이 탄생했다면, 깜밥은 93번을 손질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데, 솥바닥에 깔려 짓눌린 채 담금질을 당해 온 그 신세, 엉키고 긁혀 밖에 끌려나와 그 마지막 삶과 몫을 다한다고 생각하니,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의 밑바닥 삶도 눌리고 눌려, 깜밥 대접을 받을 지라도 남을 위해 베풀 수 있고, 그 가치와 유용성이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 고난과 인내가 큰 보람을 가져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깜밥> 중에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신호 중에서 담뱃대 두드리는 신호가 있다. 그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어릴 적 내 귀에는 다 똑같은 소리로 들렸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들은 용케도 그 신호들을 알아차리고 척척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담뱃대로 놋쇠재떨이 두드리는 소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통하는 차임벨이요, 비밀신호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큰 소리로 부르기 전에는 사랑채에서 안방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이순을 넘긴 며느리를 함부로 불러댈 수도 없었으리라. 그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에는 손님이 몇 분 오셨으니 술상을 준비해라, 밥상을 준비해라, 숭늉을 내 오너라, 상을 치워라, 손님 가신다, 등 사랑방의 지엄하신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출타하시지 않는 이상 집안의 모든 식구는 사랑방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했었던, 일방통행식의 근엄한 사랑방문화가 아니었나 싶었다. <대꼬바리> 중에서 대가족제도에서 살았던 이신구 수필가와 핵가족제도에서 자란 수필가는 그 생활경험의 깊이와 폭이 다르다. 할아버지가 담뱃대로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것을 자주 보았던 일이 있기에 <대꼬바리> 같은 수필이 나올 수 있다.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가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차임벨이요 비밀신호였다는 해석은 그럴듯하다. 핵가족시대의 수필가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일 것이다. 수필가 石河 이신구! 그의 안테나는 24시간 열려있고 그의 그물망에 걸리는 소재는 무엇이든지 바로 수필로 빚어진다. 수필가가 펴내는 한 권의 수필집은 세상을 향한 최초의 연서이자 마지막 유서가 되어야 한다는 허소라 시인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수필의 길을 걸어가라고 부탁하고 싶다. 한 편 한 편의 수필을 쓰는 일은 그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유서(遺書)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3. 石河 이신구 수필가의 앞날을 위하여 磨穿十硯 禿盡千毫(마천십연 독진천호) 벼루 열 개를 갈아서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뭉그러뜨렸다고 한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서예공부를 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지만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그 정도로 노력해야 수필가로서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게 아닌가? 踝骨三穿(과골삼천)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말씀도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었으면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뒤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한 세계적인 부자 빌게이츠의 말도 곰곰 음미해 볼 일이다. 이거야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石河 이신구가 70세에 처녀 수필집을 낸 것은 대단히 늦은 출발인 셈이다. 그러나 그 나이가 되도록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늦었다고 후회할 일만은 아닐 듯하다. 이제 와서 가버린 세월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수필에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안다. 지금은 '인생 100세 시대'다. 1년은 52주이니, 1주일에 한 편의 수필을 쓴다면 1년에 52편의 수필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2주일에 한 편씩 쓴다면 2년이면 한 권의 수필집을 엮을 원고가 모인다. 그런 계산법을 머리에 새겨두고 수필에 더 깊이 빠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不狂不及(불광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필문학이 미래문학으로서 온 문예를 주름잡을 날도 멀지 않다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수필가 이신구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훌륭한 비평이 걸작(傑作)을 남긴다는 명언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하고 싶다. 남의 올바른 비평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로운 수필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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