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은/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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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은
김 학
가정의 달 5월은 젊은 가장들의 허리가 휘는 달이다. 5월의 달력을 펼쳐 보라. 거의 절반가까이가 기념일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5일 어린이날과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6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은 무심히 넘길 날이 아니다. 그런 날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아내가 챙겨주는 식사나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랬다가는 가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가족들로부터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표를 내고 가장(家長)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없다.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기념일을 모두 5월에 모아놓은 그 누군가의 잘못이다. 젊은 가장들은 그야말로 진퇴유곡(進退維谷)이다.
나 같은 백발들은 가급적 5월엔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 도로는 몸살을 앓고, 관광지는 주차전쟁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이면 동물원이나 식물원처럼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곳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젊은 가장들이 자유롭게 차를 몰고 다니며 멋진 아버지노릇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여 직장에서 특별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출은 엄청나게 불어나지 않는가? 고희의 문턱에서 내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때 나는 가정의 달 5월을 달력에서 빼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효자효녀들이 많은 나라다. 어머니를 때려서 뼈를 부러뜨리거나 숨지게 하는 아들도 있고, 시어머니 생일잔치를 준비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였다는 패륜사건도 있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효자효녀가 훨씬 더 많으니 장래가 밝다고 하는 것이다.
어버이날 전날인 5월 7일은 고속도로가 추석이나 설 명절 못지않게 붐볐다. 5월 7일 ㄱ씨 셋째아들 결혼식에 참석차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었다. 오후 3시 45분, 서울 여의도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전주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15분이었다. 무려 6시간 30분이나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부모와 더불어 어버이날을 보내려고 귀향하는 이 땅의 아들딸들이 빚어낸 교통대란 탓이다.
이튿날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피곤했는데도 일찍 일어났는데, 그날은 바로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친가와 처가 부모님들께서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내가 찾아뵙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어르신도 아니 계신다. 텔레비전에서는 어버이날이라고 떠들썩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가 열린 것이다. 우리 부부의 가슴에 달 카네이션도 없다. 큰아들과 딸은 서울에 살고, 작은아들은 미국에 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신문도 오지 않는 일요일이어서 컴퓨터를 켜고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 8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수도권에 사는 큰손자 동현이의 전화였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손자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으니 쓸쓸하던 기분이 갑자기 활기에 넘치고, 신바람이 난다. 바로 이어서 딸아이의 전화도 왔다. 오전 10시 반쯤 교회에 가니 목사님이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 생화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목사님께서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진동의 핸드폰이 움찔움찔 움직였다.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버이날을 맞아 3남매의 축하전화를 받은 것이다.
5월 12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에겐 챙겨야 할 날이 기념일보다 하루 더 많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어버이날과 아내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곤 한다. 올해는 5월 10일 부처님 오신 날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스승의 날이나 부부의 날도 모른 체 넘겨버리기는 어렵다. 나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은 거의 돌아가셨지만, 학창시절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셨던 그 선생님들이 그립다. 스승의 날이 오면 요즘 일부 학교는 아예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려고 그런다지만 너무 삭막하여 아쉽다.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까지 막는 것 같아 안타깝다. 5월 16일 성년의 날은 아직 우리 집에서는 의미가 없다. 아들딸들은 30대 후반이고 손자손녀들은 어리니까.
부부의 날이라는 5월 20일이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그날 내가 어떤 깜짝쇼를 열어야 아내가 감동하며 기뻐할까? 아내가 부부의 날을 알고나 있을까?
몸과 마음이 다 뜨거운 20대 여인은 아프리카, 곳곳에 신비스러움이 있는 30대 여인은 인도, 테크닉이 좋은 40대 여인은 미국, 곳곳에 폐허가 있는 50대 여인은 유럽, 춥기만 하고 찾는 사람이 없는 60, 70, 80대 여인은 시베리아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시베리아 같은 아내에게 어떤 선물을 건네주어야 앞으로 나의 1년이 따뜻하고 즐거우며 행복할까, 그 해답을 찾노라 나는 오늘도 머리를 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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