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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민주화의 꽃/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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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899회 작성일 09-08-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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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민주화의 꽃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동초,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원한 민주화의 꽃이었다. 갖은 고난과 다섯 차례에 걸친 죽음의 터널을 뚫고 나와 오뚝이처럼 일어나 칠전팔기로 4수 끝에 당선된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향년 86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인생의 막을 내렸다. 야당 정치인 후광 김대중은 군사독재와 싸우다 납치와 테러, 사형선고, 투옥, 망명, 가택연금 등 험난한 역경을 이겨낸 분이다. 국가경제위기상황이었던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냈던 대통령이었으며, 남북 첫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정착시킨 분이다. 정치적인 민주화와 동서화합, 남북평화통일을 이루려고 노력해 오시던 우리나라의 위대한 정치가 김대중, 그 민주주의의 거목이 쓰러졌다. 아니 민주주의의 횃불이 꺼졌다. 모진 탄압을 뚫고 피어난 인동초,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살아온 김대중 대통령! 서해바다 남쪽 외딴섬에서 태어나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불의에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준 대통령이었다. 생명을 노리던 정적까지 보듬어 주시는 참으로 인간적인 정치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서민과 대중(大衆)을 위한 대통령이었다. 목포상고를 나온 젊은 김대중은 시대적인 풍운아였다. 뛰어난 재능을 제대로 펴지 못한 한을 풀고자 온 인생을 바쳤다고나 할까, 대학을 나오지 못한 콤플렉스를 풀기위해 노력한 결과 마침내 모스코바 국립외교대학원에서 정식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스크바대 평생 명예교수가 되었음은 물론,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까지 역임하였다. 평생의 정치역정은 고난과 박해와 좌절로 점철된 인생여로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항상 애국혼으로 불타 올랐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로 가득하였다. ‘민심은 천심이다. 사람은 하늘이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는 동학의 기본사상으로 민본주의를 외쳐온 민주투사였다. 정치는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라 했다. 혼탁한 세상에서 연꽃같이 고결하고 아름답게 피우다 가신 선배님을 존경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키고자 온몸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해온 탓으로 흙탕물속에서 피어난 연꽃이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굴하지 않으면서 오직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희생해 왔던 그분을 강경하고 과격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신문 방송 매체가 더 김대중 죽이기에 앞장서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적인 삶을 보여주는 부드러운 남자이기도 했다. 꽃과 새, 동물을 사랑하고 예술을 좋아하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리고 남달리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가족과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남자였다. 옥중에서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는 너무나도 따뜻해서 감동적이다. 모진 고문에 시달린 아들이 가슴 아파 눈물도 많이 흘렸다. 감옥 속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3만여 권에 달하는 책자를 독파한 독서광이었다. 그러기에 해박한 지식과 인간적인 깊은 철학이 있었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치논리를 펴오지 않았던가? 그분은 희대의 웅변가요, 문장가다. ‘분노의 메아리’를 비롯하여 ‘나의 갈길 나의 사상’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옥중서신’ 등 30여 권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박사학위를 받고서도 영어회화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학자가 많은데 나이 50에 영어공부를 시작한 놀라운 공부벌레였다. 수차례의 옥중 생활 속에서 영어 실력을 쌓은 실력자였다. 1980년대 초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방송매체인 ABC, NBC, 퍼블릭 라디오, 등에 자주 출연하였다. 미국에 있는 2년 동안 무려 100여회 이상 영어로 직접 연설을 했다고 한다. 국제화시대에 세계어로 활용되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이웃나라인 일본어와 중국어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개신교를 믿는 아내, 이희호 여사와는 원론적으로 같은 신앙생활을 한 셈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갖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유신정책을 반대하자 일본에 가 있는 김대중을 중앙정보부원이 납치하여 현해탄에 빠뜨려 죽이려 했다. 공작선에서 입을 틀어막고 널판자에 팔다리를 묶고 무거운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지려는 순간,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 옆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펑’ ‘펑’ 하는 비행기 소리와 함께 생사의 갈림길이 열렸다고 했다. 신군부에 의해서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 ‘악이 승리하고 선이 패배하고 마는가’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지? 하고 절규하던 심정도 이해할 것 같다. 이제 하늘도 울고, 땅도 눈물에 온통 적셔버렸다. 인권을 옹호하고 가난에 신음하는 국민의 허리를 고추 세우는 것이 바른 정치라 하시던 말씀, 오랜 정치이념으로 새겨야 하지 않을까?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온 대지를 감싸주는 평화로운 세계가 오기까지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서 편히 쉬게 할 것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 속에 온 국민의 가슴을 담아 보내 드립니다. 고이 잠드소서! 동토에 묻혀 민초와 함께 피어나던 인동초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신은 영원한 민주화의 꽃이었습니다! (200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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