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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크고 힘센 놈/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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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42회 작성일 11-05-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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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크고 힘센 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우리 집 세탁기는 사시사철 입만 헤~에 벌리고 졸고 있다, 빨랫감이 들어오면 신이난다. 매일같이 던져지는 양말과 속옷, 바짓가랑이에 황토 흙이 칠갑을 한 청바지를 보곤 농장의 안부를 묻는다. 땀 냄새가 올올이 밴 등산복과, 불쑥 얼굴을 내미는 셔츠도 덥석 끌어안고, 세상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친구들과 자식자랑을 늘어놓다, 삼식(三食)이 때문에 밭이랑 같은 주름만 깊어진다는 푸념도, 세탁기 안에서는 다 털어놓는다. 벌써 12년 전인가 보다. 조그마한 반자동 세탁기가 멈춰 서자, 용량 10kg의 최신형을 들여앉혔다. 살적엔 너무 큰 것 같았지만, 이왕 사는 김에 통 크고 힘센 놈을 선택하였다. 녀석은 덩치 값을 하느라 웬만한 빨랫감은 물론 이불빨래까지 쓱싹 해치운다. 식구가 많을 때는 하루에 한 번,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이다. 그동안 씻어낸 세탁물이 몇 트럭은 될 것 같다. 고맙다는 말 대신, 오랜 눈 맞춤으로 서로를 헤아릴 줄 아는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시작 버턴을 누르자,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쏴아~시원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동그란 통속에서 모두다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흰 거품을 뿜어 올린다. 빙글빙글 돌리다 흔들어대니, 삶에 찌든 땟물이 슬금슬금 걸어 나온다. 몇 번이고 비비고 두드려 말간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서 꽉꽉 눌러 짜면 덜커덩 입구가 열린다. 아~무슨 일이 있었을까? 얽히고설켜 한 몸이 되어버렸다. “허~이놈들!” 싸움을 말리듯 엉킨 세탁물을 떼어내며 툭툭 털어 건조대에 줄을 세웠다. 한나절이 지나니 뽀송뽀송해진 옷들이 화들짝 웃는다. 내 마음에도 세탁기가 있다면, 햇볕 따스한 날, 스위치를 누르고 싶다. 가슴 아려오는 그리움은 살며시 펴보고, 녹슨 기억력은 쓱쓱 문질러 닦아내고 싶다. 추운 기억들과 주렁주렁 매달린 욕심일랑 흘러 보내고, 올곧은 사랑으로 채울 수는 없을까? 느지막한 오후, 오롯이 앉아 해지는 줄 모르고 세탁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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