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가 피운 아름다운 꽃/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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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가 피운 아름다운 꽃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바람 잘 날 없는 엇 궁합의 살림살이 30여 년. 극과 극을 달리는 성격이 수시로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아옹다옹한다. 그래도 뒤꼬리가 짧아 밟히지 않은지라‘돌아서면 언제냐’이다. 그러기에 여태껏 무난히 살아왔다.
어제도 우리 부부는 옥신각신 다투었다. 전에는 내가 양보를 많이 하여 비교적 조용히 끝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배가 산으로 오르는 바람에 가장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비책을 강구했다. 그래서 요즘엔 언쟁이 시작되면 맞받아치며 시소게임을 벌인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시끄러우니 자연 침묵전(沈黙戰)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
저기압으로 날씨마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터덕거리는 연장전 중에도 자존심과 인격은 최대한 존중하고 언성은 낮춘다. 빠져나갈 수 있는 뒷길도 터주며 눈치작전을 폈다. 그러면서 잘잘못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야만 불똥이 튀지 않고 자식들의 심성에도 누를 끼치기 않는다. 손자병법이 적중한 것이다.
그동안 산을 떠나 평지풍파에 시달리던 범[虎]이 늦게나마 굴을 되찾았다. 그제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배가 물에 잠기면서 아내를 맞는다. 진즉 이랬어야 했다. 때마침 천둥번개를 몰아오면서 쏟아지던 소낙비가 서서히 개고 밝은 햇살이 마중을 나왔다.
아내가 외출을 하잔다. 전주 완산칠봉 기슭에 자리 잡은 전주시립도서관 뒷산의 철쭉공원으로 갔다. 곳곳에 만개한 철쭉과 왕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여러 차례나 방송매체를 타서인지 상춘객들이 많았다. 오늘은 아내가 언제 다투었느냐는 듯 먼저 분위기를 잡아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꽃구경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영산홍 연가가 온 산을 뒤덮었다.
꽃동산을 벗어나 완산칠봉을 올랐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아 정상에 서니 얼마 전에 살았던 집이 바로 코 아래에 있었다. 그때 완산칠봉은 눈앞에 두고도 올라보지 못했던 산이다. 삶의 그늘에 가려 앞만 보였을 뿐 풍월에 쫓기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야가 넓어지면서 세상이 보이더니 저 멀리 서 있는 내 모습까지도 보인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가족들의 흐뭇한 표정에 나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친김에 그리 멀지 않은 전주향교를 구경하러 갔다. 지나는 길목 남천교 중간에 위치한 누각을 눈도장으로 찍었다. 버드나무 천변 길을 따라 한벽루 쪽 홍살문을 지나서 향교에 다다랐다. 만화루를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역시 늙은 은행나무였다. 온통 노랑물감으로 가을을 장식했던 그 고목이 정정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우리 전통문화의 숨결을 음미하며 풍치를 즐긴 뒤, 영화‘성균관 스캔들’촬영장을 뒤로하고 향교를 빠져 나왔다.
교동 한옥마을 둘레길을 걸었다. 고등학교 때 살던 동네다. 그때는 보잘 것 없는 기와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허술한 동네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주를 대표하는 전통한옥마을로 단장되어 관광지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수십 년 전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아름답게 황혼을 물들인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할아버지다.
경기전을 지나치니 나의 어린 시절을 담금질했던 초등학교 생각이 났다. 둘레둘레 찾아보니 학교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학교는 그 옆 동네로 옮겨져 있었다.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경기전은 태조 어진을 보러 온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천주교전동성당에서 인류의 구원을 잉태해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묵상을 하였다.
오가는 승용차들의 행렬 따라 오거리 문화의 광장에 이르렀다. 전주국제 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눈요기도 할 겸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그냥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다.
엇박자의 궁합이 오늘은 하모니의 리듬을 타고 집안을 맴돈다. 즐거운 나의 집이다. 환하게 미소를 짓는 눈결이 세상을 살맛나게 해준다. 뜻 깊은 주말의 오후였다.
아내는 영원히 함께해야 할 친구이자 애인이다. 가시 돋친 아내요 찔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장미꽃이지만 역시 꽃은 꽃이었다.
(2011. 04. 29. ~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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