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추같은 수필반 문우들/서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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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추(鳳雛)같은 수필반 문우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서 호 련
교수님께서 www.saemga.com 을 치면 우리 행촌수필문학회가 나온다고 하셨다. saemga가 무슨 말인가 했는데, 들어가 보니 마로니에 샘가라고 씌어져 있어, 이 말이 샘물가란 뜻이구나 생각했다. 수필창작반은 별난 세계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면, 교수님은 ‘자 숙제검사 합시다.’하고 한 사람씩 칭찬거리를 소개하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 날이 되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좋은 수필공부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세상풍조가 남을 좋게 이야기하기보다 남을 좋지 앉게 이야기하는데 우리 반 문우들의 경우는 그렇지 아니하다. 이웃의 또는 친지들의 좋은 점만을 발굴하여 이야기 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어느 오동나무 씨가 슬레이트지붕 위에서 발아되어 그 뿌리가 땅 아래로 뻗어 내리는 나무의 생명력을 칭찬하는 문우도 있었다. 나도 누구를 한 번 칭찬했다가 교수님으로부터 그것을 소재로 글을 한 번 써 보라고 하셔서 썼던 것이 ‘양심과의 싸움’ 이었다. 교수님은 많이 발전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칭찬거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으려고 하는 그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좋은 인성과 덕성을 길러가는 방법이 되고 있다. 교수님은 수업 날의 교재에 학생들이 쓴 글을 채택하여 본인이 읽게 하고 그리고 반우들로 하여금 한 사람씩 그 글에 대한 독후감을 말하라고 하신다. 이것 역시 매우 효과적인 학습 방법 인 것 같다. 문우들은 한결같이 그 글에 대한 칭찬을 한다. 자기가 느낀 것을 말 하면서 어느 부분을 삭제하면 좋겠다든가, 또는 보완하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느 문우님은 현직 대학교수이신데 어느 날, 나의 글이 전북일보에 게재된 것을 보고 그 복사본과 스크랩한 원본을 좋은 봉투에 담아 나에게 건네주면서 그 글을 잘 읽었노라고 하셨다. 문우들 중에는 교육장님도 계시고 퇴역하신 교장선생님도 계시며, 사업가 그리고 등단하신 수필가도 여러분 계신다. 나는 그분들에게서 겸손하고 중후한 인품을 본받는다. 내가 속으로 놀라워했던 것은 수요반, 목요 주간반, 금요반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목요야간반에 등록하여 수필 공부를 하는 문우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분들을 이처럼 이곳에 모이게 하는가? 맑은 샘물가에 모여드는 산 짐승들을 생각한다. 이곳이 바로 그 마로니에 샘가가 아닌가? 누군가는 나더러 70이 넘어서 밤에 남원에서 전주까지 수필공부를 하러 다니느냐고 힐난도 하지만 나에게도 영혼을 위한 샘물이 필요하다. 누가 행촌수필문학회 홈페이지 이름을 마로니에 샘가라고 지었을까? ‘깊은 산속 옹달샘’ 이란 동요는 우리에게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누가 나에게 노래를 시키면 반달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이 동요다. 그러니 최신 유행가를 모르는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누가 노래를 시키는 게 가장 겁난다. 나의 휴대폰 멜로디도 바로 이 동요다. 전화를 받는 분들마다 ‘거, 산토끼노래 좋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마로니에 샘가는 가히 봉추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서당과도 같다.
봉추(鳳雛)! 봉의 새끼란 말인데, 그가 누구인가?
삼국지의 3대 책략가는 단연 제갈량, 주유, 방통이다. 일찍이 형주에서는 제갈공명을 와룡(臥龍), 방통을 봉추(鳳雛), 사마휘를 수경(水鏡)이라 불렀다. 와룡 봉추는 모두 수경의 제자들이다. 수경선생이 유비에게 와룡이나 봉추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위나라 조조의 백만 대군에 맞선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로 조조의 거대한 수군전단을 일시에 불태워 몰살케 한 방통이 칭찬의 명수였다. 와룡 방추라 하듯 삼국지 정사에서도 책략에는 방통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삼국지 전문학자인 이중텐(易中天) 셔먼(廈門)대학 역사학교수도 유비의 일등 책사는 제갈량이 아니라 방통이라고 쓴 바 있다.
방통은 일찍이 사람의 인품을 감별할 줄 알았고 열심히 인재를 양성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은 공적도 크게 평가하여 듣는 사람들이 너무 과찬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것을 괴이하게 여겨 자주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방통이 대답하길,
“지금 천하는 크게 혼란스럽고 정도(正道)는 파괴되어 선인은 적고 악인이 많습니다. 지금 미풍양속을 되살리고 도업을 기르려 하는데 사람들이 우러러 볼 가치가 있는 사람들, 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자꾸 띄어야 세상의 교화를 높이고 사회가 밝아져 착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힘을 받고 그러한 사람들을 본받으려는 풍조가 조성될 것입니다. 현재 칭찬한 10명 중 반을 잃는다 해도 그 절반을 얻는 것이니 남을 칭찬하는 일이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방통의 칭찬론이다. 오늘 이 사회와 정확히 비슷한 상황이다.
방통은 노숙에 의해 손권에게 잠시 의탁했다가 제갈량의 천거로 유비에게로 갔지만 얼굴색이 검고 들창코였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중용되지 못하고 뇌양현의 현령에 임명되었다. 이것에 불만을 품은 방통이 일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내자 유비는 징계를 할 요량으로 장비를 그에게 보내 진실을 파악토록 했다. 그러나 장비는 그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 유비에게 보고하기를
“사람은 외모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 털어 놓았다. 그 뒤 방통은 유비의 모사가 되어 후에는 제갈량과 함께 군 최고 사령관인 군사중랑장이 되었다. 제갈량이 형주에 남아 지키고 방통이 유비를 수행하여 촉 정벌에 나설 때 유비의 백마를 바꿔 타고 성도진격 중 낙봉파에 들어섰다. 군사들이 이곳이 어디냐고 묻자 낙봉파(落鳳波)라고 하였다. 봉추가 떨어지는 곳이라는 지명 때문에 곧 후퇴명령을 내렸으나 백마 탄 유비를 쏘라고 외치는 매복병들의 함성과 함께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봉추는 아깝게도 36세의 나이로 전몰하였다.
방통이 낙봉파에서 일만 개의 화살을 받고 낙마했지만 그의 생애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중상, 모략, 비난 그리고 욕설,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이 혼돈과 어두움의 시대에 남을 칭찬하고 인재를 키우려고 노력했던 봉추의 덕목은 분명히 시대의 등불이었고 시대를 치유하는 양약이었다. 조선조 중기(인조-광해군)에 영의정 상촌 신흠이 검신편에서 쓴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
라는 말씀을 이 시대에 다시 음미해 볼 만하다. 칭찬은 대화와 소통 그리고 사회의 통합과 화목을 이끄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결과만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과정과 노력을 칭찬하는 것도 중요하다. 출세를 위해서는 조조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모르지만 이 사회의 화합을 위해서는 봉추 같은 양반이 많아야 한다. 우리 수필반의 문우들은 틀림없이 이 시대의 양반들이요, 시대의 양약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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