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유혹에 끌려/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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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유혹에 끌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 석 조
스치는 바람결에 벚꽃들이 춤을 추고, 활짝 핀 개나리가 울타리를 노랗게 꾸미고 있었다. 아내도 이 봄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는지 점심을 밖에 나가 먹자고 했다. 때가 좀 지났지만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달리니 어느새 화심 순두부 집에 닿았다. 길가에 활짝 핀 벚꽃과 울긋불긋 펼쳐진 봄의 색깔들도, 집에서 나오길 잘했다며 칭찬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 꽉 들어찬 차들이 입구까지 막아 쉽게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식당 안에는 고픈 배를 달래려는 상춘객(賞春客)들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려 싸구려 시장판 같았다. 2인분 반찬만 차려 놓은 탁자에 마주앉은 중늙은이 부부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우리부부도 옆에 앉자고 사정하여 얼른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삐 지나가는 종업원을 불러 순두부찌개 백반을 시켜놓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광주사람들이었다. 늦게 주문한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이 기다려준 덕이었다.
집을 나설 때는 점심을 먹은 뒤 송광사 벚꽃을 구경하고, 위봉사와 대아호를 돌면서 한가한 오후의 봄빛을 즐기려 하였었다. 송광사 입구의 벚꽃을 구경하고 왔다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니 수 년 전 송광사 벚꽃 구경하던 일이 떠올랐다. 위봉사 쪽을 포기하고 바로 밤티재를 거쳐 대아호를 찾기로 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받고 겁도 없이 혼자 차를 몰고, 주행(走行)연습으로 여러 차례 올라갔던 그 길이었다. 그때 대아호의 주변 길은 포장이 다 되지 않아 운전대가 덜덜덜 떨리는 구간도 있어 당황했었다. 호숫가를 오르다 갑자기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갈 때, 발 아래로 달려드는 푸른 물 때문에 온 몸을 식은땀으로 적시기도 하였다. 물안개가 골짜기에 가득 차오르면 빵 빵 거리는 소리로 호숫가를 돌아야만 했던 추억이 떠올라 내 젊은 날을 회상할 수 있었다.
차가 산 비탈길로 올랐다. 산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쨍쨍 쪼이는 양지쪽어서인지, 올라갈수록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구불구불 달려온 길을, 밤티재에서 내려 주변 산들을 보았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다른 나무들을 제치고, 화사한 꽃으로 저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산벚나무가 많았다. 그곳에도 생존경쟁이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어느 해 추석날 늦은 오후, 막내아들 내외와 우리부부 넷이 대아호를 돌았었다. 고산을 지나는데 감을 주렁주렁 매단 누런 감나무들이 지천(至賤)으로 널려있어, 유명한 곶감 생산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아호의 둑을 내려다보는 정자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둑 위쪽은 푸른 물의 잔잔한 수면이 산모퉁이로 숨고, 둑 밑으로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석양빛에 가을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 자연 환경을 처음 본 며느리는 "야! 야!"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이곳 밤티재에 와서도 막 떠오르는 추석의 둥근 달을 보고, 좋아하던 막내며느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차례 가 보았던 대아 수목원의 봄빛이 보고 싶어 들리자 했더니, 아내가 더 좋아했다. 운장산 가는 길을 오른쪽에 놓고 구불구불한 길로 달렸다. 대아호의 푸른 물이 춤을 추는 우암교를 지나 바로 오른 쪽으로 들어섰다. 냇가 건너편 바위에 선 세 그루 진달래가, 진분홍빛 봄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 눈 익은 수목원으로 올라갔다.
대아수목원은 노령산맥 줄기의 운암산과 대아호가 어우러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림과 인공림이 조화를 이루고 울창한 소나무와 삼나무, 편백나무 숲 사이로 맑고 깨끗한 계곡은 대아호로 이어진다. 수목원에는 산림문화전시관을 비롯하여 열대 식물원과 분재원이 온실 안에 있고, 장미원과 수생식물원은 야외에 있다. 숲속의 교실과 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체육시설을 갖추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튤립으로 꾸민 꽃밭을 지나 온실 속에 있는 열대식물원과 분재원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식물들의 생김새와 그 꽃들에 눈길이 머물렀다. 소나무를 비롯하여 분재를 만들기 어려운 나무들이 멋진 분재가 되어 온실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보지 못한 정자(亭子)가 산 중턱에 있었는데 판자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오르니, 화수정(花樹亭)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 정자에서 내려다본 수목원은 봄꽃천지였다. 계곡 건너 산책길 바위틈에 핀 붉은 꽃 잔디는 층층으로 띠를 만들어 계단으로 된 산책로를 장식하고 있었다. 산비탈에 하얀 꽃으로 단장한 백목련의 우아함도 눈길을 끌었다.
산중턱을 걷는 사람들 틈에 끼어 황토포장으로 된 순환도로를 따라 걸었다. 길이 푹신푹신하여 걷고 싶은 길이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 바퀴 돌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는, 금낭화 자생지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음에 오르기로 하였다.
수목원에 산그늘이 내릴 때 갈 길을 재촉하는데, 석양빛은 대아호에 금물결을 연출하고 있었다. 한 줄로 선 개나리들은 봄바람에 춤을 추며, 내년에 또 만나자며 환송의 손짓을 하는 듯했다.
주위가 어두워질 때 큰사위와 딸, 손자들을 데리고, 아중 저수지변의 민물고기 매운탕 집에 들어갔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보름달이 금물결을 깔아놓고 있는데 마치 중국의 문호 이태백이 나를 유혹하는 듯하였다.
(201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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