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줍는 사람/이의민
페이지 정보

본문
이삭 줍는사람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나는 가난한 산골 농사꾼의 집에서 태어나서 살면서 수확이 끝난 뒤 곡식의 이삭을 많이 주웠다. 여름에는 보리수확을 끝낸 밭에서 작은 대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동생들과 뙤약볕 아래에서 보릿대를 베어낸 자리를 더듬으며 보리목을 주웠다. 밭 귀퉁이에 서있는 잘 여물지 않은 보리목을 따서 주워 담으며 널따란 밭을 뒤지고 나면 대소쿠리에 보리목이 가득 채워지면서 보리이삭 줍기도 끝났다.
그 다음은 하지감자를 캐낸 논에서 두럭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괭이로 빼놓지 않고 파면 숨어있던 하지감자가 얼굴을 내민다. 하지감자 이삭줍기는 서둘러야 했다. 하지감자를 캐낸 논에는 모내기를 바로 하려고 물을 넣기 때문이다. 벼이삭은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뒤지며 나락이삭을 주웠다. 그때는 낫으로 일일히 벼를 벳기 때문에 이삭이 많이 떨어져 이삭줍기가 재미 있었다. 한 바구니 가득 주워 집에 돌아오면 어머님께서 칭찬을 많이해 주셨다.
고구마는 가을이라 밭을 오래 놓아두어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다. 고구마 이삭줍기가 가장 재미 있었다. 주인이 미처 파내지 못한 밭 두럭 한쪽을 만나면 횡재를 하여 주먹 만하고 길쭉한 고구마를 몇 개 만날 수 있으니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먹을 게 없으니 이삭이라도 주워야 했다. 하지만 요즘엔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라 이삭을 줍는 아이들도 없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기계로 수확을 하기 때문에 이삭 주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글 이삭을 줍는 재미로 산다. 앞서가는 선배 문인들이 떨어뜨린 글을 주워 읽고, 쓰며 이삭을 줍는다. 글이삭 줍기도 생각보다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잘 쓴 수필을 읽으며 내게 떨어지는 이삭을 부지런히 주워 내 머리에 차곡차곡 담아놓는다. 한 번 주워 담은 글 이삭은 쉬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다. 글 이삭 줍는데도 요령이 있어야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선배문인들의 글 포대 속을 잘 살펴보면 이삭이 많이 떨어져 있다.
글 이삭 줍는 재미는 추운겨울밤 뜨뜻한 온돌방 이불 속에서 군밤을 까먹는 재미보다 더 맛이 있다. 글 이삭을 줍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 밤이 깊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글 이삭을 줍게 된다. 그 이삭을 많이 주워 가방이 꽉 채워지면 이삭줍기를 마치고 나의 머릿속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꼭 필요 할 때 꺼내어 써 먹을 것이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글 이삭을 계속 주을 것이다. 토실토실하게 여문 글 이삭을 계속 주워 모을 것이다. 글 이삭 줍기는 나만의 재미요, 내가 사는 보람이자, 살맛나는 내 세상이다. 그런데 글 이삭을 줍는 걸 도와주시는 교수님도 계신다. 글 이삭을 줍기 전에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깨워 주신다.
(2010.11.6.)
- 이전글외계인의 나라, 타이완/이신구 11.04.19
- 다음글돌아온 외규장각 도서/서상옥 11.04.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