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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골의 아침풍경/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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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18회 작성일 11-04-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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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골의 아침풍경 金 鶴 어둠을 벗겨낸 새벽이 눈을 뜨자 뜨락의 나무들도 덩달아 기지개를 켠다. 밤새 불침번을 선 귀뚜라미가 참새와 제비에게 임무를 물려주고 피로를 달래려 긴장의 나래를 접는다. 참새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니고, 제비는 곡예를 하듯 전깃줄에 걸터앉아 노랫가락을 뽑는다. 신바람이 난다. 독창인가 하면 합창이고, 합창인가 하면 중창이다. 귀가 따가운지 뜨락의 무궁화와 장미가 선잠에서 깨어나 눈을 부빈다. 상쾌한 초가을 아침을 여는 춘향골의 정경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길에 나선다. 어느새 길가의 상점마다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오가는 차량도 뜸하고, 띄엄띄엄 눈에 뜨이는 행인들의 발걸음도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구경한 평양거리 만큼이나 한가롭다. 천천히 골목길을 걸으며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기를 거듭거듭 되풀이하며 걷는다. 몸 속에 쌓인 찌꺼기를 말끔히 쏟아내고, 맑은 공기를 배불리 들이켜니 심신이 한결 상쾌하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데는 아침산책보다 더 효과적인 게 없을 듯싶다. 어느덧 광한루(廣寒樓) 정문에 이르렀다. 잠시 어디로 갈까 망설인다. 승사교를 지나 금암공원(錦岩公園)에 오르면 남원 시가지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어 좋다. 또, 동림교를 지나 동림 약수터로 가면 약수를 실컷 마실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나의 발길은 해태 석상(石像)의 마중을 받으며 광한루 뜨락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슬을 담뿍 머금은 잔디가 유난히 싱싱해 보인다. 새들의 지저귐이 고막을 따갑게 한다. 아침마다 광한루가 무료로 개방되고 있는데도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다. 절간처럼 고요하다.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를 한 모금 마시니 속세의 온갖 번뇌가 말끔히 씻겨지는 듯한 기분이다. 분수대 옆의 다람쥐 집을 바라본다. 다람쥐는 나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쳇바퀴를 돌고 있다. 숙명처럼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고 또 돈다. 춘향사당으로 향한다. 사당의 문은 어느새 열려 있고, 빨간 치마에 풀빛 저고리 차림의 춘향 영정이 눈에 띈다. 나를 맞으려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선 듯한 모습이다. 볼수록 아름다운 이 땅의 여인상이다. 서구화의 열풍이 휩쓴 이 땅의 어느 고을에 가면 저런 전통적인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춘향사당을 뒤로하고 삼신산(三神山)으로 들어선다. 영주산, 봉래산, 방장산을 소요하다 이끼 낀 돌무더기에 걸터앉는다. 턱을 괸 채 연못에 시선을 던진다. 동해의 바닷물처럼 맑고 푸르렀더라면 얼마나 더 운치가 있을까 생각에 젖는다. 이따금 잉어들이 잠수를 하다가 물장구를 친다. 깜짝 놀라 바라보면 잉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근엄한 자태로 잠수를 계속한다. 옛날의 잉어에 비기면 어리고 세련되지 않아 아쉽지만 몸매는 날렵하고 귀엽다. 세월이 가면 저들도 어른이 되어 묘기를 보여 줄 날도 있으려니 싶다. 삼신산을 빠져 나와 광한루 누각 뒤란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끼 낀 비석 30여 개가 아침 점호를 받으려는 자세로 서 있다. 남원부사, 전라감사, 암행어사의 선정비(善政碑)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다. 어떤 것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져 글자를 알아 볼 수도 없다. 공직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은 모름지기 광한루에 들러 이 송덕비(頌德碑)들을 훑어보며 목민관(牧民官)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을 일이다.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완월정(玩月停)에 오른다. 눈으로는 춘향제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인파가 보이는 듯하고, 귀로는 열창하는 명창의 판소리 가락이 잡히는 듯하다. 어느새 동녘에선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눈부신 아침햇살이다. 완월정을 내려와 월매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텅 빈 월매집이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한 기분을 자아낸다. 춘향아씨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창공으로 치솟았을 그네도 한가로이 늦잠을 즐기고 있다. 광한루를 찾노라면 나는 '못다 군 꿈'을 떠올리곤 한다. 광한루 조경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나는 S양과 더불어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오늘 아침 산책 코스도 그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이다. S양은 나에게 '월간 수필문학'이란 문예지를 처음으로 사다 준 여인이고, '밤의 여로'란 프로그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니터하여 날마다 긴 편지를 보내주곤 하던 자상한 여인이다. 나는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날마다 원고지에 담아 전파로 띄워 보냈고, 그것이 쌓여 훗날 '밤의 여로'란 방송 수필집이 도기도 했다.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할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따금 편집되지 않는 비디오 텦처럼 S양과의 아련한 추억이 재생되곤 한다. 나로 하여금 문학의 길로 들어서도록 인도해 준 이가 바로 S양인 까닭이다. S양과의 짧으면서도 진한 분홍빛 추억은 언제나 '못다 꾼 꿈'으로 내 가슴에 살아있다. 아침마다 거니는 광한루 산책은 추억의 우물에서 잃어버린 젊은 날의 낭만을 길어 올릴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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