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파란 불/서호련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파란 불/서호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17회 작성일 11-04-01 15:26

본문

파란 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서 호 련 “내려앉은 도로에서도 파란불 기다려 길 건너” 세계의 신문들이 일본의 대지진 속에서도 빛나는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에 대하여 보도한 제목이다. 37,8년 전,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캐나다를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부부간에 나가는 것은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조차 허락되지 아니했던 시절이다. 달러를 아끼려는 정부의 시책 때문이었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만났고 우리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던 여행이었다. 내가 간 곳은 토론토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워터루라는 독일인들이 세운 조그만 도시였는데 시가지는 조용하고 도시는 매우 아름다웠다. 특이한 것은 도심의 상가를 제외하고는 시내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모두가 직장엘 나가든지 아니면 모두가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길거리마다 사람이 넘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니 산책을 하다 길을 묻고 싶어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물론 큰길이건 작은 길이건 신호등이 있다. 외곽도로는 비포장 길이었지만 살수차가 물을 뿌리고 다녔다. 먼지를 안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아침 주택가에 청소차가 다니는데 차 밑에 커다란 원형 브러시가 돌면서 먼지를 쓰는 것들이 신기했다. 며칠 뒤 우연히 한 지역신문을 보게 되었다. ‘어떤 행인이 길을 가다가 빨간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무려 3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그 뒤 이 행인은 시청직원과 함께 그 신호등이 고장 난 것을 확인하고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 했다는 내용이었다. 별천지 같은 나라였다. 그곳에 약 2주일 체류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법이 매우 엄중하고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경찰관을 제일 무섭게 아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한국동포 한 사람이 법원으로부터 교통법규 위반으로 벌금 통지서를 받았는데 자기는 위반한 적이 없어 법원에 가서 항의를 했단다. 직원이 서류철에서 관계서류를 끄집어내어 얼마 전 길에서 과속을 하여 CCTV에 찍힌 자기 차의 번호를 보여주더란다. 알겠다고 하니까, 열람수수료를 더 내라고 하더란다. 그 무렵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 지우를 만났는데 5살짜리 자기 얘기가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남의 아기를 두 손으로 밀쳤는데 그 아이 엄마가 나와서 “어디서 이런 야만인이 왔느냐?”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그러한 준법정신에 매우 감명을 받았고 나도 귀국하면 그렇게 해야지,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귀국하였다. 드디어 내가 그것을 행할 때가 돌아 왔다. 어느 날 밤 광주중앙초등학교 대인동 쪽 정문 앞에 신호등이 있었는데 빨간 불이었다. 밤은 깊었고 사람들은 없었지만 나는 빨간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다가 파란불이 들어와서야 의기양양하게 길을 건넜다. 그러나 내심으론 사람들이 쳐다보면 얼마나 웃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한 달쯤 지나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시민의식이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경험했었다. 대지진 발생 후 미야기현 센다이시 편의점 앞에 수백 명이 차례로 줄을 서는 모습이 보였다.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치기를 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는 없었다. 심지어 센다이 도심의 도로는 대부분 꺼진 상태였지만 일부 신호등이 남아 있는 곳에선 시민들이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진보다 무법천지의 약탈과 폭력이 더 무섭다는 말이 지난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퀸 뉴올리언스나 아이티 지진 때 나왔지만 일본은 달랐다. 이러한 끔찍한 참상 앞에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 배려정신 때문이다. 일본 엄마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로 가정교육을 시작한다. 이에 대해 한 중국인은 중국과 일본의 거대한 격차를 느낀다며 개방과 민주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회만이 이처럼 성숙함을 갖는다고 했다. 일본이란 국가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지진을 통해 일본인은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했다. 문화와 환경을 바탕으로 한 질서와 생활교육, 오랜 훈련 학습이 그러한 질서와 시민의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일 북한으로부터 날아온 미사일 몇 발이 서울에 떨어지고 그래서 전운이 감돈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이번 지진을 통해 2만 8천여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일본이 입은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전 방사능이다. 그 피해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인들에게 인간의 품위와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말이나, 글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세계는 또한 인간의 형제애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 주었다. 삶이 어려웠던 시절엔 경제만 발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육이다. 입시교육이 아니라 국민적 각성을 위한 범국가 차원의 산 생활교육이다. 그것은 1,2십년에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50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그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믿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